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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漵 칼럼

사랑의 편지

사랑의 편지/ 정홍순 시인
2018-06-26 오전 9:57:33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시인



     
    “누나!/이 겨울에도/눈이 가득히 왔습니다.//흰 봉투에/눈을 한 줌 옇고/글씨도 쓰지 말고/우표도 붙이지 말고/말쑥하게 그대로/편지를 부칠까요//누나 가신 나라엔/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의 ‘편지’라는 시이다. 누나에게 붙이는 이 편지야말로 아름다운 영상편지 같다. 희고 성결한 시인의 심성과 깨끗한 나라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녹아있는 눈 오는 날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눈이 오는 겨울도 이렇게 따뜻함이 있을 수 있다니 글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닐까싶다.


    편지글은 읽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다른 글과 다른 점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글보다도 자신의 생각과 진실이 담겨있는 글로 수필의 한 맥락이라 한다. 격식이 갖추어지고 예절이 숨어있는 글, 편지(便紙)가 점점 우리들 곁에서 전자매체로 대체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번 학기에 기말과제로 ‘사랑의 편지’ 쓰기를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로 제시하였다. 평가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객관을 요구하기보다는 철저히 주관을 요구한 방법이라 학생들과 합의하에 시험대신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이 쓴 편지를 읽으며 내내 눈물이 나고, 가슴에서 밀려나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중년 이상의 인생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처음엔 편지 한 통씩 써보자는 제안에 모두 난감해 했지만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 문이 열리고, 스스로 다짐하고, 위로와 격려, 자신의 성찰과 용서 등 다양한 글들이 어우러진 학기였다. 참으로 건강한 한 학기를 보냈구나 싶어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한 것은 감동의 글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큰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흐려진 눈에도 읽을 수 있게 한 편지, 소녀같이 예쁜 꽃 편지지에 아로새긴 편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몇 장이나 되는 편지, 결혼 후 아내에게 두 번째 드리는 편지, 살아온 일상을 눈물로 적은 편지, 그리움에 사무쳐 하늘에 붙이는 편지, 처음으로 비밀을 털어놓는 편지, 사업실패에도 꿋꿋하게 성장한 자랑스러운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모두가 훌륭한 작가였다.


    ‘흐르는 물을 놓아 온통 산을 귀멀게 했느니’라는 최치원 선생과 같은 탁월한 상상력의 문장가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감동을 엮어낼 수 있는 일상의 느낌을 적을 수 있다는 것이 편지가 아니겠는가.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말하지 못할 것들을 종이에 적어 소통하는 일이 사랑의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필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편지가 있다. 매 주일마다 달력 뒷면에 한 주일의 단상을 적어 둘둘 말아 전해주는 장애우가 있다. 그는 이 ‘달력편지’를 몇 년째 필자에게 쓰고 있는 중이다.


    그의 편지에는 개그가 들어있고, 유머가 넘치기도 한다. 동네 이장이 집집마다 개를 매놓으라는 방송을 했었는가 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 집 덕구는 벌써 매놨지롱!”이라고 말이다. 울다, 웃게 만드는 그가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싶어 시로 대신 답장을 썼다.


    “몇 년째 그는 내게/편지를 쓰고 있다/두루마리 상소문처럼 둘둘 말아/길고긴 이야기를 건네주는/한주간이 즐겁다/쓰기 좋은 편지지도 있으련만/꼭 달력을 뜯어/편지를 쓴다/나는 그에게 답장 대신/손 한번 잡아주는 손바닥 편지가/고작이다/우리는 알고 있다/애호박이 자라고/마음이 고이면/애호박이랑 같이 주고 싶어지는/친구란 것을 안다/오늘은 조용히 놓고 간/그의 눈물을 읽는다/축축하게 젖은 애호박 꼭지에다/새우젓 치고 지져낸 바다/푸른 문장을 훌훌 떠먹는다”(‘달력편지’ 전문, 『물소리를 밟다』(2017) 중)


    편지는 간략한 격식을 갖추고 있지만 틀에 박힌 것도 아니고, 누가 먼저랄 순서도 없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락이나 책갈피에 포스트지에다 쓴 작은 편지부터 담뱃갑 종이에 쓴 감옥의 편지까지 편지는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편지를 받는 수신자는 그래서 우정이나,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도 있고, 붙이지 못하는 편지도 있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읽어보는 편지도 있으며, 사도 바울처럼 마음 판에 쓴 영의 편지도 있다. 이렇게 편지에는 이기주가 말했던 것처럼 글(文)은 지지 않는 꽃으로 있다. 따뜻한 말과 언어가 가지고 있는 서신의 시대, 글의 꽃이 다시 피었으면 싶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할 수 있는 지면에 정성과 혼을 담아낸다면 그 또한 수행이 아닐까. 글 배워 남에게 주자는 말같이 남에게 글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 속에서 인연의 법을 이어가며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가 기록되어지고 읽혀진다면 문자를 가진 한글의 나라, 한글의 세계화가 확장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 글을 써보자. 몇 글자라도 편지를 써보자. 사랑의 편지를 써서 붙여보자. 편지지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보자. 편지를 써서 입술로 봉인해보자. 어딘가에 지지 않는 꽃을 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