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단이 생각
가을비 부슬거리는 육모정길, 사람이 적었으면 아마 비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춘향이 누운 자리에서 시작한 길, 주자(朱子)가 발 담근 때 이른 밥이나 먹고 가자 성에 차지 않으면 배만 고프다고, 나물밥에 참기름 떨군다 청국장엔 월매 넉살이 들어가 감질나고, 향단이가 버무린 도토리묵 말랑말랑 젓가락 차며 떨어진다 봉긋 솟은 놋주발 금세 행랑에 던지고, 머루주 한입 헹구며 성삼재 넘는 동안 안개가 자꾸 불러온다 매번 춘향이로 시작하고 춘향이로 끝나는 길, 자전거 탄 씩씩한 여자 알 밴 장딴지, 비늘 털며 소나무가 용천한다 열두 자 노고할미 거웃 상단에서 흘렀으니 저 또한 이 산의 측근, 상상이 떨어지려면 죽어야 수인데, 처박고 살아서 가라고, 길목에 싸놓은 모랫더미 앞에서 브레이크 밟는다 - 「향단이 생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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