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순 시인
시인 김소월은 ‘기억’이라는 시에서 “뿌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자갯돌 밭에서도 풀이 피듯이/기억의 가시밭에 꿈이 핍니다”고 하였다. 시인의 말같이 풀의 뿌리처럼 사람에게는 기억이란 뿌리가 존재하고 있다.
기억(記憶)은 머릿속에 기록하여 생각하는 것이라 쓰고 있는데, 사람의 기억에는 짧게 기억하는 것과 길게 기억하는 것으로 나누고, 이러한 기억들을 방해하는 것을 망각이라고 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훈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단순훈련일 것이다. 이때 단순이라 해서 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은 복잡하게 얽매인 것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밖이 요란한 현대인들이 치료받아야 할 안이 바뀌는 문제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며 살아야하는 현대인은 그래서 고달픈 것이다. 그런가하면 나와 상관없는 것은 거들떠보기도 싫어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아무것이나 간섭하고 민폐를 끼치며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지만 개성 없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식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달하였다. 단세포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한국적이란 말도 무색하게 될 날이 조만간 닥칠게 뻔하다. 이렇듯 점차로 사회적 인식이 약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옛것을 기억하거나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들이 병들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회와 역사적 힘은 기억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게 될 때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하였고, 예수의 제자들이 전도에서 돌아와 귀신들이 항복하더라는 말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당부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12일(목) 광주 무등산 오방수련원에서는 ‘최흥종 목사 신림기도처’ 사적지 지정 선포식이 있었다. 오방(五放) 최흥종 목사(1880-1966)가 1950년 4월 7일 세운 신림기도처가 한국기독교사적 제35호로 지정된 것이다.
한국의 영성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 오방은 ‘영원한 자유인’ ‘성자의 지팡이’라는 별명처럼 평생을 섬김과 나눔으로 살다간 인물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오방(가정, 사회, 사업, 국가, 종교)이라는 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가 사형선고를 내리고 영원한 자유인의 삶을 살고자하였다.
그는 음성나환자들(호혜원), 결핵환자들(송등원, 무등원)을 돕는 한편 빈민구제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과 기독교청년운동에도 앞장서는 실천하는 기독교인이었다.
이러한 실천적 배경에는 ‘호세아를 닮은 성자’ 이세종 선생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 오방은 도시락을 싸들고 70리 길을 걸어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이세종 선생에게서 성경을 배웠다. 목사인 그가 평신도에게서 성경을 배웠다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하지만 광주에서 이세종 선생으로부터 성경을 배우기 위해 발품을 팔은 사람 중에는 최흥종, 강순명, 백영흠 씨가 있었다.
그들은 ‘통독’을 통하여 성경에서 성경을 배우고 읽힌 훌륭한 기독교지도자들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훈련을 통하여 이 시대에 영성의 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집념’에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세종 선생이 말했던 ‘파라 파라 깊이 파라’는 말과 같이 말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독창적인 자신의 서체를 이루기까지 구멍 난 벼루가 10개, 버려진 붓이 1000개였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러한 선생의 작품에는 작가의 위대함이 깃들여 있는 만큼 작품을 보는 식견과 지키려는 위대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숨어있다.
소전 손재형 선생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추사의 작품들은 일본 후지쓰카 가문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도 기억에 몰두하여 사적으로 지정하는 반면에 우리들은 있는 것도 기억하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차이라면 큰 차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도 서로가 공유하게 되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또한 역사에 손을 대려는 무모한 짓을 서슴지 않는 것엔 더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은 오히려 나쁜 기억을 조장하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을 빼내어 죽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는 자들에게 권력의 힘으로 기록하고 싶겠지만 풀의 기억을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으로 역사에 소신을 두었지 않았는가.
아무리 하찮고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기념하고 기억해주는 마음, 일화나 의미들이 더욱 확장되게 살아가자. 건강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초대되었음을 서로 나누며 사는 나라가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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