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에 답하여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
2018년 04월 25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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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이, 정죄 받는 것보다 분노는 덜한 것이 사실이다. 누구도 정죄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절대자처럼 정죄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입장, 생각대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정도를 벗어나면 응당 죄에 대한 자기책임이 따라야한다. 우리는 일방통행처럼 불법 속에서 법의 정신이 밟혀죽는 세월을 쌓고 살아왔다.
그래서 정죄하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의식화 됐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면서 법이란 것이 법전을 읽고 공부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코드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법적 코드를 인식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가끔은 분노하며 소주 몇 잔에 눈물을 적실뿐이다. 사는 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지난 3월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그의 짧은 메시지를 방송으로 받고 분노하고 있었는데 ‘무술옥사’라며 옥중서신이란 말을 얹혀듣고 누가 그에게 답장을 쓴단 말인가. 오늘은 읽을지 모르지만 소박한 답장이나 쓰고자 한다.
들리는 말에 수인(囚人)으로 성경만을 읽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성경 어느 한 줄이라도 주술적으로 붙잡으려고 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저 회개하는 인간이 되기만을 기도했으면 좋겠다. 그이 입에서 대한민국, 교회, 장로라는 말보다는 ‘죄인 중에 괴수’란 성경구절에 하루 종일 눈이 박혔으면 할 일이다.
그리고 무술옥사라니, 하긴 제왕이 감옥에 갇혔으니 무술옥사라 말할 수는 있겠다. 보복행위라고 억울한 감정을 씹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믿는 신에 대하여, 종교적 관계나 돈에 얽혀 순진하게 믿어준 이들에게 ‘비행(非行)을 자행한 사람이 자신임을 죽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무술옥사라 했으니 사백년쯤 거슬러 올라가 선조임금 때 있었던 기축옥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인과 동인의 당파, 이념전쟁으로 조선은 한치 앞을 모르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화(士禍)라고 하면 기득권과 부의 쟁탈이 아니었던가.
이념과 기득권 싸움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 기축사화, 기축옥사인데 1000명의 나라 인재가 3년여 동안 죽어나간 뒤에 일본은 서슴지 않고 쳐들어올 수 있었다.
여기에 위관(委官) 인물이 정철이었다. 그는 가사문학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조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사미인곡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손에 죽어나간 사람들은 당대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개인감정이 섞인 동인 이발 문중의 씨를 말리려고도 했음을 통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전라도 인재등용금지라는 족쇄가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데는 다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인재 한 사람을 길러내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모를 바 없다. 무고한 사람이라도 동인과 연관 있으면 죽어야하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무술옥사라 한 그이는 나라백성들을 먹여 살릴 것처럼 행세한 10%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4대강이 썩은 퇴적물로 가득 찬 것처럼 백성들은 더 빚더미에 눌러앉게 되었다. 강을 파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 성경을 보고 신실했다면 선지자 아모스가 설파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를 보고 또 보았을 텐데 말이다.
무술옥사는 정의의 칼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엄중한 심판이다.
촛불의 혁명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처럼, 무술옥사는 세습(대물림)의 단죄이다.
신도의 헌금으로 이룬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행태나, 법령을 행세하여 부와 기득권을 대물림하려는 작태는 매 한가지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 가운데 에베소사람들에게 보낸 신약성경에 이르기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며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한 이 성구에 밑줄 그으며 반복하여 읽기를 바란다.
기축옥사나 무술옥사는 우리나라 역사에 다시없는 재앙이거나 심판이다. 우리들 가슴 판에 새겨 역사의 교훈으로 남을 비운의 사건들이다. 그이는 사월의 꽃들에게 눈이 내려 과수가 절반이나 결실할지 모를 일임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송수권 시인은 “초록은 두렵다/초록의 움트는 연두빛 눈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섭다/초록에도 감옥이 있고 고문(拷問)이 있나니!/이 감옥 속에 갇혀 그 동안 너무 많은 말들을/숨기고 살아 왔다”(송수권, ‘초록의 감옥’ 부분)고 한 것처럼 다음 옥중서신에서는 참말 같은 말 한마디를 들어보고 싶다.
통일혁명당사건(統一革命黨事件) 무기수 신영복의 편지 검열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어머님 아버님께 보내는 편지에 ‘신록을 바라보며’에는 “5월, 창밖의 몇 점 신록에 이따금 피곤한 시선을 기대어 쉬곤 합니다”라고 안부를 올리며 끝을 맺는 문장이 있다.
이제는 제발 신록에 기대고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끝으로 인생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감옥학교에서 낙제하지 않기를 바란다. 광야에서 죽지 말고 살아 착한 사람이 꼭 되어 어머니 아버지의 바른 자식이 되길 기도한다.
/정 홍 순 시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입장, 생각대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정도를 벗어나면 응당 죄에 대한 자기책임이 따라야한다. 우리는 일방통행처럼 불법 속에서 법의 정신이 밟혀죽는 세월을 쌓고 살아왔다.
그래서 정죄하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의식화 됐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면서 법이란 것이 법전을 읽고 공부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코드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법적 코드를 인식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가끔은 분노하며 소주 몇 잔에 눈물을 적실뿐이다. 사는 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지난 3월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그의 짧은 메시지를 방송으로 받고 분노하고 있었는데 ‘무술옥사’라며 옥중서신이란 말을 얹혀듣고 누가 그에게 답장을 쓴단 말인가. 오늘은 읽을지 모르지만 소박한 답장이나 쓰고자 한다.
들리는 말에 수인(囚人)으로 성경만을 읽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성경 어느 한 줄이라도 주술적으로 붙잡으려고 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저 회개하는 인간이 되기만을 기도했으면 좋겠다. 그이 입에서 대한민국, 교회, 장로라는 말보다는 ‘죄인 중에 괴수’란 성경구절에 하루 종일 눈이 박혔으면 할 일이다.
그리고 무술옥사라니, 하긴 제왕이 감옥에 갇혔으니 무술옥사라 말할 수는 있겠다. 보복행위라고 억울한 감정을 씹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믿는 신에 대하여, 종교적 관계나 돈에 얽혀 순진하게 믿어준 이들에게 ‘비행(非行)을 자행한 사람이 자신임을 죽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무술옥사라 했으니 사백년쯤 거슬러 올라가 선조임금 때 있었던 기축옥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인과 동인의 당파, 이념전쟁으로 조선은 한치 앞을 모르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화(士禍)라고 하면 기득권과 부의 쟁탈이 아니었던가.
이념과 기득권 싸움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 기축사화, 기축옥사인데 1000명의 나라 인재가 3년여 동안 죽어나간 뒤에 일본은 서슴지 않고 쳐들어올 수 있었다.
여기에 위관(委官) 인물이 정철이었다. 그는 가사문학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조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사미인곡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손에 죽어나간 사람들은 당대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개인감정이 섞인 동인 이발 문중의 씨를 말리려고도 했음을 통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전라도 인재등용금지라는 족쇄가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데는 다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인재 한 사람을 길러내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모를 바 없다. 무고한 사람이라도 동인과 연관 있으면 죽어야하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무술옥사라 한 그이는 나라백성들을 먹여 살릴 것처럼 행세한 10%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4대강이 썩은 퇴적물로 가득 찬 것처럼 백성들은 더 빚더미에 눌러앉게 되었다. 강을 파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 성경을 보고 신실했다면 선지자 아모스가 설파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를 보고 또 보았을 텐데 말이다.
무술옥사는 정의의 칼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엄중한 심판이다.
촛불의 혁명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처럼, 무술옥사는 세습(대물림)의 단죄이다.
신도의 헌금으로 이룬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행태나, 법령을 행세하여 부와 기득권을 대물림하려는 작태는 매 한가지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 가운데 에베소사람들에게 보낸 신약성경에 이르기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며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한 이 성구에 밑줄 그으며 반복하여 읽기를 바란다.
기축옥사나 무술옥사는 우리나라 역사에 다시없는 재앙이거나 심판이다. 우리들 가슴 판에 새겨 역사의 교훈으로 남을 비운의 사건들이다. 그이는 사월의 꽃들에게 눈이 내려 과수가 절반이나 결실할지 모를 일임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송수권 시인은 “초록은 두렵다/초록의 움트는 연두빛 눈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섭다/초록에도 감옥이 있고 고문(拷問)이 있나니!/이 감옥 속에 갇혀 그 동안 너무 많은 말들을/숨기고 살아 왔다”(송수권, ‘초록의 감옥’ 부분)고 한 것처럼 다음 옥중서신에서는 참말 같은 말 한마디를 들어보고 싶다.
통일혁명당사건(統一革命黨事件) 무기수 신영복의 편지 검열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어머님 아버님께 보내는 편지에 ‘신록을 바라보며’에는 “5월, 창밖의 몇 점 신록에 이따금 피곤한 시선을 기대어 쉬곤 합니다”라고 안부를 올리며 끝을 맺는 문장이 있다.
이제는 제발 신록에 기대고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끝으로 인생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감옥학교에서 낙제하지 않기를 바란다. 광야에서 죽지 말고 살아 착한 사람이 꼭 되어 어머니 아버지의 바른 자식이 되길 기도한다.
/정 홍 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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