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海漵 칼럼

장 웅의 마음으로 쓰는 캘리그라피

이메일프린트퍼가기글자크기 원래대로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장 웅의 마음으로 쓰는 캘리그라피/ 정홍순 시인
9/5/2016 8:43:21 AM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사람은 언제부터 붓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글씨와 그림을 그려온 것일까. 붓이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붓은 진(秦)나라 몽염(蒙恬)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그보다 일찍 은(殷)나라 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을 개량한 것으로 추축하고 있다.

     

    어찌했거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붓은 누군가의 손에서 인간의 사유(思惟)로 소통하는 천부적인 기질을 타고 난 것이었다. 그의 흔적들이 역사가 되고 형상화 시키며 인간의 혼과 함께 놓여있을 때마다 칼보다 더 위대한 힘과 능력을 지닌 창조적 소산이었던 것이다.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싶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쓰고 싶은 계절 가을이다. ‘누구든지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노랫말처럼 소소한 일상을 붓으로 그리고 적어 세상에 붙이고 있는 이가 있다. 그의 세계를 함께 읽어보고, 만나고 싶은 이는 청암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인 캘리그래퍼 장 웅(張 雄) 교수이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라는 뜻이나, 조형상으로는 의미전달의 수단이라는 문자의 본뜻을 떠나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즉,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이다.

     

    장 교수는 2013년을 시작으로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있는 역량 있는 작가이다. 이미 우리지역 뿐만 아니라 인사동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그만의 예술세계를 인정받은 바 있고, 올해도 광주에서(6. 23 - 6. 29)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장 교수가 추구하는 붓의 말과 글은 해마다 그의 농담(濃淡)이 다르다. 이는 여느 작가와 분명한 차별성이 있는 것으로 인간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예술정신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네 해에 걸쳐 보여준 작품들은 구도자적인 입장에 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내면을 조용히 관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작, 마음으로 쓰는 캘리그라피는 한글이 갖고 있는 조형성을 살리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살려낸 작품들이다. 특히 캘리그라피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서예와 목적성(상업용)이 있는 그 중간에서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여부를 실험하는 계기였다.

     

    다음으로는 한지와 붓의 농담에서 변화무쌍한 예술의 매력이다. 끌리는 힘과 빠져드는 매력이 없다면 예술은 구태의연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서툴고 떫은 것은 곧바로 한계가 있듯 장 교수는 잘 곰삭은 맛을 내기 위해서 부단히 숙성시키느라 몸 닳은 이미지인 생숙생(生孰生)의 작품들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지난해 ‘인생을 그리다’에서는 구도자적인 면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캘리그라피는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경건한 의식이라고 작가 스스로가 언급하고 있다. 문자의 형식적인 탈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시각화되어 태어나는 것으로 심리상태가 조율되는 먹빛의 조절을 우리는 읽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다면 한지와 먹과 붓의 만남처럼 즐거운 날의 생이 정화된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

     

    올해 장 교수는 캘리그라피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는 명제를 남기고 있다. ‘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왕유의 시를 일컫던 말처럼 그림과 글의 조화를 입체한지로 실험하고 작품화한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금번 장 교수는 쉽게 할 수 없는 입체한지의 작품을 매우 성공적으로 펼쳐 냈다.

     

    붓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마음의 빛이 시화가 되고, 시화는 다시 의인화되어 상생의 사유(思惟)공간을 확장해가고 있는 장 교수는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뜻이 담겨있는 인간의 본질을 미적 갈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진정한 예술이란 시대 속에서 민족정서를 살려내고 발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때 장 교수의 마음으로 쓰는 캘리그라피는 바로 그곳에 있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6/09/05 08:43 송고
     

    '海漵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리가보는 정유재란 전적지  (0) 2016.09.20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0) 2016.09.14
    신덕리 물천어  (0) 2016.08.29
    둘이면 더 깊은 물을 푼다  (0) 2016.08.14
    그곳에 가면 도투마리가 있다  (0) 201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