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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漵 칼럼

그곳에 가면 도투마리가 있다

[외부칼럼] 그곳에 가면 도투마리가 있다

정홍순/시인

2016년 08월 01일(월) 19:36
정홍순 시인

[전남도민일보]무더위가 한창이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더니 유례없는 더위가 전국을 찜통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아직 더위가 한풀 꺾이려면 몇 주는 더 견뎌야 할 것 같은데 더위에 약한 노인들이나 어린이들이 많이 걱정된다.

무더위를 잘 보내려는 지혜가 돋보이던 생활도구들이 생각난다. 부채, 패랭이, 대자리, 모시옷, 죽부인, 보리밥바구니 등 지혜가 돋보이는 것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그 쓰임새가 옛것과 별 차이는 없지만 자연소재를 벗어난 것들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요즈음 새로운 말로 조합해서 나오는 신조어들이 많아 어느 때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때가 다반사다. 이에 알아듣지 못하는 세대들을 외계인 취급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아름다운 말들을 못 알아듣는 꼴과 똑 같다. 전문용어가 아닌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임에도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무더운 날 돗자리나 대자리를 펴고 그 위에 누우면 땀띠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잘 이룰 수 있다. 원인을 대라면 소재가 자연친화적인 시원한 소재들이며, 채상문양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도투마리문양이라는 것인데 이 ‘도투마리’라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댕기머리의 ‘댕기’만큼이나 아름답다.

이 도투마리문양은 의식주에 흔히 멋을 내는 고급스런 문양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옷에도, 잔칫상에도, 집의 구조에도 도투마리문양은 빠지지 않는다. 또 더러는 지형에도 사용하여 도투마리섬(여), 도투마리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투마리 밖에 있는 굴/대섬 밑으로 있는 굴/천수만에 있는 굴은 나룻개로 오너라/석화야 부르면 으-응/정월대보름 해변에서 듣던 할미새가/담 너머로 굴부르기 섬섬 치고”(졸시 ‘조새’부분)

도투마리는 베틀에 있는 한 도구로서 베매기에 의해 날실을 감는 H자형의 널빤지다. 베틀 앞다리 앞쪽의 누운다리 위에 얹어두는 것으로 방언으로는 도꾸마리, 도토마리, 도트마리라고도 한다.

지금도 진땀을 흘리며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는 베틀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시는 일 년에 세 번 수확하는 데 2달 간격으로 5월부터 10월까지 일수, 이수, 삼수라 하여 이수 기간인 7∼8월 모시를 제일로 친다. 무더운 여름 졸음과 모기를 쫒으며 베틀에 앉아 밤 깊도록 한 올 한 올 짜던 필자의 고향에는 삼밭골이라는 마을도 있다.

“등마루/사람 사는 수가 나오는 삼실 같이 긴/철거덕철거덕 걸어 짜던 밤/지친 등잔이 파르르 연기 날리며/아침 새 되어 날아가던 마전동麻田洞/날콩풀 냄새가 코끝을 매었다”(졸시, ‘삼밭골’부분) 지금은 베 짜는 이들이 없지만 ‘도투마리’는 그래서 기억이 난다.

지역마다 옛것을 보존하고자 축제형식을 빌어 다양한 행사를 치르곤 한다.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끔 상혼에 젖어 의미가 퇴색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데 이에 반해 아주 한적한 곳에 자리한 민속전시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여수민속전시관’이다.

비록 한 지역의 전시관이지만 여수민속전시관(여수시 율촌면 서부로 1442)은 사라져가는 여수시 향토사자료와 민속자료를 보존, 전시하고 있어 옛 조상들의 생활모습의 이해와 전통놀이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2012년 6월 21일 개관하였다. 폐교를 민속전시관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여수시의 정책이 잘 반영된 곳이기도 하다.

전시관은 민속관과 동백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민속관은 조선시대부터 근, 현대를 이르는 생활민속자료와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으며, 동백관은 조선후기에서 근래까지 사용되었던 생활소품과 여수시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전시실이다.

무더운 여름 피서를 시원한 곳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아이들 손잡고 여수민속전시관도 둘러보는 것 또한 좋은 피서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부채, 보리밥바구니, 대자리, 모시옷, 우물, 베틀의 도투마리도 보고 조상의 지혜와 옛 물건의 이름 하나쯤 기억해보는 배움의 뜻 깊은 시간이 된다면 땀이 나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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