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신덕리 물천어
정홍순/시인 |
2016년 08월 29일(월)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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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민일보]‘뻘밭에 찍힌 발자국에서 붉은 핏자국 같은 노을을 보고 서쪽 길을 의식하는 시인의 영혼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를 만나보는 것도 겨울 우포늪의 시심(詩心)이다. 그리고 밤별을 줍고 돌아와 쫀득쫀득한 붕어찜을 들거나 메기탕을 든다. 이는 곧 영양식이 아니라 영혼식(靈魂食)으로서의 입맛이다. 여행이란 늘 그렇지 않던가. 버들붕어처럼 떨림이 없는 영혼이란 얼마나 삭막한가!’
위 인용한 글은 주간동아에 송수권 시인이 연재한 ‘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창녕 우포늪의 붕어찜’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겨울 붕어찜을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식’이라 칭하였다. 이처럼 시인이 남도의 멋을 논하면서 그 특별한 맛을 빼놓고 쓸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 끝자락 이젠 풀도 울고 간다는 처서도 지났다. 무덥던 올여름 보양식이 더 그립던 한 해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까닭에 시인의 영혼식 만큼이나 기억되는 남도의 맛이 생각난다. 먹었던 기억은 잊을 수 없고 거짓이 없듯이 비가 떨어지고 나면 투망을 던져 양동이 가득 잡아 자작하게 끓이던 ‘물천어(붕어찜)’가 생각난다.
시원한 냇가나 계곡으로 천렵 나가 먹지 않아도 물천어는 남도의 대표적인 보양식임에 틀림없는 음식이다. 물천어는 꼭 붕어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잘한 잡어들이 다 들어간다. 특히 물고기 맛보다도 고구마줄거리에 배인 양념과 민물고기의 향이 어우러진 탁월한 맛을 일컬어 개미가 있다 했던 것이다.
이런 맛을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니다. 한 냄비 조린다고 영혼을 흔들 만큼 그런 맛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물천어를 먹으며 인심이 포근한 마을에서 살았던 행복한 시절이 생각나 눈시울이 젖어오는 곳은 화순 신덕리(信德里)다. 종괘산 아래 지석천이 흐르고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농사를 일구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흥이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신덕리는 큰 마을은 아니지만 멋과 맛,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다. 예로부터 남도의 풍류가 질펀하게 흐르는 곳, 문향의 예가 깊은 작가들의 고향으로 시인 정려성 목사, 소설가 김신운 교수, 아동문학가 정영기 선생, 수필가 문형숙 화순문학회장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지금도 이 분들이 고향에서 받은 문학의 힘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과연 지석천의 물천어 힘이 아닌가 싶다.
산천은 의구하나 인적은 간곳없다 했는가. 지석천에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건져내던 정쌍기, 김성철, 김옥관, 정대철 이들은 벌써 중년이 되었고, 물천어의 달인 박성례 씨 으뜸이 할머니는 노년의 망중한을 서울에서 풀고 있다니 세월이 덧없기만 하다. 지금 생각하면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며 깨끗하고 정겹게 아이들을 길러본 곳이 신덕리 만한 곳은 없었다.
아마 정영기 선생의 동화 ‘쌍무지개 뜨는 마을’의 구수한 옛이야기가 풀어져 나오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수묵화 같은 정겨움을 어쩌지 못해 필자도 ‘신덕리 아침’이란 시집을 엮기도 했다. 바람에 버들이 춤추는 강, 마름꽃이 총총히 피는 강, 독심천 대숲을 휘돌아 가는 강, 아름다운 이름 신덕리를 기억하며 물천어 이름을 새겨 넣는다. 피폐해져가는 농촌, 누리밥상 유산 하나로 남기고 다시 가을을 맞이하자니 서럽기도 하다.
오늘도 달은 지석천에서 찰방찰방 놀고, 종괘산 아래 신덕리는 고단한 하루를 고요히 눕히고 있을 것이다. 20여 년 전 물천어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살던 정다운 이웃들, 그들 속에서 썼던 시집에서 한 편의 시를 골라 읊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근래 보기 드문 아침/초록빛 아이들이/땅따먹기 하던 공터에는/햇빛 한 자락 더 얻으려고/고추 멍석을 펴느라/콩 멍석을 펴느라/깨 멍석을 펴느라 부산하다/장마 끝에 튕겨 나온 햇빛을/가을 무늬로 곱게 물들이는 아낙들은/코싸움까지 벌이고/고추잠자리는 쉴 자리를 잃고/높은 하늘만 지치게 돈다/가을 신덕리 아침은/파란 하늘을 열고/사뿐히 날아왔다’(졸시, ‘신덕리 가을’전문)
위 인용한 글은 주간동아에 송수권 시인이 연재한 ‘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창녕 우포늪의 붕어찜’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겨울 붕어찜을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식’이라 칭하였다. 이처럼 시인이 남도의 멋을 논하면서 그 특별한 맛을 빼놓고 쓸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 끝자락 이젠 풀도 울고 간다는 처서도 지났다. 무덥던 올여름 보양식이 더 그립던 한 해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까닭에 시인의 영혼식 만큼이나 기억되는 남도의 맛이 생각난다. 먹었던 기억은 잊을 수 없고 거짓이 없듯이 비가 떨어지고 나면 투망을 던져 양동이 가득 잡아 자작하게 끓이던 ‘물천어(붕어찜)’가 생각난다.
시원한 냇가나 계곡으로 천렵 나가 먹지 않아도 물천어는 남도의 대표적인 보양식임에 틀림없는 음식이다. 물천어는 꼭 붕어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잘한 잡어들이 다 들어간다. 특히 물고기 맛보다도 고구마줄거리에 배인 양념과 민물고기의 향이 어우러진 탁월한 맛을 일컬어 개미가 있다 했던 것이다.
이런 맛을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니다. 한 냄비 조린다고 영혼을 흔들 만큼 그런 맛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물천어를 먹으며 인심이 포근한 마을에서 살았던 행복한 시절이 생각나 눈시울이 젖어오는 곳은 화순 신덕리(信德里)다. 종괘산 아래 지석천이 흐르고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농사를 일구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흥이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신덕리는 큰 마을은 아니지만 멋과 맛,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다. 예로부터 남도의 풍류가 질펀하게 흐르는 곳, 문향의 예가 깊은 작가들의 고향으로 시인 정려성 목사, 소설가 김신운 교수, 아동문학가 정영기 선생, 수필가 문형숙 화순문학회장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지금도 이 분들이 고향에서 받은 문학의 힘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과연 지석천의 물천어 힘이 아닌가 싶다.
산천은 의구하나 인적은 간곳없다 했는가. 지석천에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건져내던 정쌍기, 김성철, 김옥관, 정대철 이들은 벌써 중년이 되었고, 물천어의 달인 박성례 씨 으뜸이 할머니는 노년의 망중한을 서울에서 풀고 있다니 세월이 덧없기만 하다. 지금 생각하면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며 깨끗하고 정겹게 아이들을 길러본 곳이 신덕리 만한 곳은 없었다.
아마 정영기 선생의 동화 ‘쌍무지개 뜨는 마을’의 구수한 옛이야기가 풀어져 나오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수묵화 같은 정겨움을 어쩌지 못해 필자도 ‘신덕리 아침’이란 시집을 엮기도 했다. 바람에 버들이 춤추는 강, 마름꽃이 총총히 피는 강, 독심천 대숲을 휘돌아 가는 강, 아름다운 이름 신덕리를 기억하며 물천어 이름을 새겨 넣는다. 피폐해져가는 농촌, 누리밥상 유산 하나로 남기고 다시 가을을 맞이하자니 서럽기도 하다.
오늘도 달은 지석천에서 찰방찰방 놀고, 종괘산 아래 신덕리는 고단한 하루를 고요히 눕히고 있을 것이다. 20여 년 전 물천어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살던 정다운 이웃들, 그들 속에서 썼던 시집에서 한 편의 시를 골라 읊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근래 보기 드문 아침/초록빛 아이들이/땅따먹기 하던 공터에는/햇빛 한 자락 더 얻으려고/고추 멍석을 펴느라/콩 멍석을 펴느라/깨 멍석을 펴느라 부산하다/장마 끝에 튕겨 나온 햇빛을/가을 무늬로 곱게 물들이는 아낙들은/코싸움까지 벌이고/고추잠자리는 쉴 자리를 잃고/높은 하늘만 지치게 돈다/가을 신덕리 아침은/파란 하늘을 열고/사뿐히 날아왔다’(졸시, ‘신덕리 가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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