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감옥에서의 푸른 편지
정홍순 / 순천 희락교회목사·시인 |
2016년 03월 01일(화) 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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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서점 헌책방에는 주인하고 책들만이 새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간간히 참고서를 찾는 손님이 문턱에서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가는 동안 기형도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을 읽고 있었다.
스물아홉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 기형도의 ‘지칠 때까지 희망을 꿈꾸기’라는 목적의 남도기행을 따르며 동시대인으로서 그 앞에 편지를 보내고 싶어졌다. 대구에서 광주, 광주에서 순천을 거쳐 부산,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간 희망의 노트에 몇 글자 적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1988년 8월 2일(화요일) 저녁 5시부터 8월 5일 밤 11시까지 3박4일 간의 짧은 여행기간 중 몇 시간씩 머물다 간 광주와 순천에 대해 적은 도시의 이름들을 고쳐주고 싶어서다.
시인은 광주를 ‘유령의 도시’ ‘화산의 도시’라 하였고, 순천을 ‘소금의 도시’라 하였다. 시인에게 당시 광주는 지저분한 터미널과 호객하는 아가씨들 침침한 뒷골목을 빠져나와 ‘충금’다방 2층에서 적은 첫인상이 ‘유령의 도시’였고, 망월동에서 만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와 서방시장까지 동행한 통한의 시간을 보낸‘화산의 도시’였다.
순천에서는 역전시장을 거쳐 풍덕동다리까지 서너 시간동안 머물면서 물고기 썩는 소금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시라고 희망노트에 적었다. 시인은 가고 세기는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광주를 문화수도, 예향의 도시라 부르고 있다. 지금쯤 다시 방문한다면 민주 성지를 거쳐 비엔날레와 국립공원 무등산에서 남도의 정신을 만날 것이다. 갯바람이 물씬거리던 순천은 생태수도가 되었고 제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을 두고 그전처럼 서너 시간 만에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인의 기록은 그래서 희망에 두었다는 것을 다시 읽으며 욕망에서의 희망이 아니라 역사의 희망, 민족의 희망, 희망을 열어내고자 하는 인간에서 광주와 순천은 이렇게 살아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매화꽃이 피고나면 초록이 물들어 올 것이다. 시인이 희망의 지평을 넘나들 때 15척(尺)의 담장 안에서 신영복 교수는 푸른 수의를 걸치고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87년이 저물면/88년이 밝아오고/88년이 저물면/89년이 밝아오고/(중략)/계속 밝아옵니다.”라고 계수씨 편에 스무 번째의 옥중 세모를 맞으며 희망을 붙여주고 있었다.
희망은 새봄을 맞는 것처럼 맞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희망을 가두고 있는 인간, 그 인간에서 몸부림 친 시인과, 담장 안에서 징역으로 갇힌 무기수의 희망과 시인이 광주에서 전화하려다 그만 둔 송수권 시인의 ‘초록의 감옥’으로 나는 희망의 단서를 잡게 된 것이다.
“초록은 두렵다/어린날 녹색 칠판보다도/그런데 저요, 저요, 저, 저요, 손 흔들고/사방 천지에서 쳐들어 온다/이 봄은 무엇을 나를 실토하라는 봄이다/물이 너무 맑아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보고/비명을 지르듯이/초록의 움트는 연두빛 눈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섭다/초록에도 감옥이 있고 고문이 있다니!/이 감옥 속에 갇혀 그동안 너무 많은 말들을/숨기고 살아왔다”(송수권, ‘초록의 감옥’전문)
시인은 우울한 유년시절,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담은 한 권의 시집(『입 속의 검은 잎』)과 희망의 노트를 우리에게 남겼다. 이제 나는 시인에게 문화수도와 생태수도인 무등(無等)과 무진(霧津)의 푸른 편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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