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팔찌를 말하려니 왠지 로맨스 소설의 제목이 갑자기 떠오른다. 하지만 소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제목 같은 팔찌를 말하고자 한다.
건강팔찌가 한참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도 나도 팔목에 팔찌 아니면 밴드를 하고 다니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의 약속을 나누어 커플반지처럼 손목에 두르고 다니는 팔찌매듭이 유행인 듯하다.
약속이나 계약을 히브리어로 브리트(berit)라고 한다. 브리트는 부러뜨리다(쪼개다)는 말로 거울이나 검 등으로 행하던 아주 오래된 일에서 비롯됐다. 물론 멋과 행운을 바라고 팔찌를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이나 계약에는 서로의 인격을 두고 체결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예외일수는 없는 문제가 난민의 문제인데 얼마 전 영국의 난민촌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아주 특별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의 주거지마다 문간을 붉은 색으로 칠했으며 손목에는 붉은 팔찌를 채워서 난민임을 식별하도록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호나 안전 차원에서였겠지만 당사자들은 이보다 더 큰 차별은 없는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었다.
복지혜택에서도 차별복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처사였다. 물론 자국민들과 똑 같은 복지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국적 국가인 북미지역의 인종차별이나 영국의 난민정책이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세계인의 창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자선 팔찌를 기억할 것이다. 자선단체나 시민단체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새겨 만든 실리콘 소재의 밴드를 말하는 데 그 유래는 고환암을 이겨낸 미국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이 설립한 랜스 암스트롱 재단(LAF)이 전 세계에 고환암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자들을 돕기 위해 ‘강하게 살자(Live Strong)’란 글자가 새겨진 실리콘 팔찌를 제작해 1달러에 판 것이 시초가 됐다.
이제는 전 세계 각종 자선기관과 시민운동단체들의 벤치마킹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밴드착용의 부정적인 시각 또한 만만치가 않다. 영국에서는 청소년들이 실리콘 밴드로 성적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빨간색 밴드는 “난 오늘 섹스할 준비가 돼있어”란 메시지이고, 검은색 밴드는 “최근 애인과 헤어졌어”, 보라색은 “난 게이야”, 분홍색이나 파란색 밴드는 “이성애자”임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일부 판매업자들과 인터넷 쇼핑몰이 판매대금 중 극히 일부만 구호기관에 내고 착복해 자선이란 본래의 의미가 무색한 경우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난민들에게 채워준 팔찌가 인권유린의 상징이 된다고 한다면 약속을 금 같이 여기는 신사의 나라는 그들의 본심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어쩐지 붉은색 팔찌는 느낌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붉은색은 기혼이나 열정,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번 영국의 처사로 보아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손목을 두르게 한다.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반대하는 국가들도 많은데 난민을 수용한 것은 얼마나 따뜻한 정이 있는가. 하지만 절반의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데 있지 넘치도록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정이 많은 나라도 없다. 조금은 부족해도 인간의 자존감(인격)만큼은 손상시키지 않는 복지정책과 국가정책이 시행되는 약속의 붉은 손수건이 펄럭이는 나라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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