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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漵 칼럼

율포와 수문포에서 시를 적시다

[외부칼럼] 율포와 수문포에서 시를 적시다

정홍순/시인

2016년 10월 17일(월) 22:31
정홍순

[전남도민일보]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고 하는 가족과 모처럼 휴일나들이를 떠났다. 남해 바닷가는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가을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은 보성과 장흥이 아닐까 싶다. 거기 율포와 수문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번 나들이는 시가 있는 바닷길로 정하고 떠나기로 했다. 물론 그 길에는 이순신 장군의 길이 숨어 있지만 역사공부는 다음기회로 돌리고 순전히 가을 바다가 있는 해변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시가 있는 바닷길에서 만나고자 하는 작가는 장흥의 한승원과 보성의 문정희 시인이다.
장흥군은 2005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지구로 수문권이 선정됨에 따라 ‘시가 있는 여닫이 바닷가 산책로’ 600m에 ‘한승원 문학 산책로’를 조성하여 한승원 시인의 30여기의 시비가 20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문학의 강군이라 할 수 있는 장흥군이 펼친 ‘천관산 문학동산’과 함께 이루어낸 역점사업 중 하나이다.
바다의 풍광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낸 시비들은 한승원 시인의 고향 이야기로, 율산 마을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여 있을 뿐만 아니라 집필실 해산토굴의 역작들이기도 하다. 율산 마을 사람들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시인의 딸 한강 작가를 커다란 고향의 자긍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산책로 앞에는 직접 채취한 갯것들을 손님들에게 내놓기 위해 식당도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필자의 추억이 떠올랐다.
어느 핸가 수문해수욕장에서 오토바이 키와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채취 허용된 구역에서 키조개와 조개를 잡는 일에 열중하다 생긴 일, 그 후 몇 해 지나 문학 산책로가 조성되고, 시비 앞에서 바다를 쳐다보다 고무신 한 짝이 혀를 내밀 듯 물 빠진 모래 속에 박혀있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의 신발은 아니었겠지만 한 편의 시를 쓰게 되었다.
“고무신 신고 팔아온 발품 장흥 편백나무 숲이랑 한승원 詩碑바다 종려나무 해변길이 참으로 오지다 신발 코에 묻은 시커먼 노상의 때 슬쩍 편백나무 장단지에다 문질러 걸어본 수작 발끈한 산이 떠밀어 오래된 장난으로 묻어둔 바다 수문포로 내뺐다 어느 여름 잃어버렸던 고무신 혓바닥처럼 박혀 탈골한 허연 뼈다귀로 헤헤거리며 음송하는 곡절을 들었다 시여, 바다여, 잘 있었구나 애달던 너 여기 있었구나 시인의 할아버지와 낮도깨비 겅중겅중 깨금발놀이 신통부리다 덩달아 한달음으로 건너와 문지방에 나란히 솟구치며 난 뿔//돌아보면 헤헤 또 돌아보면 헤헤 늦도록 혓바닥이 사그라지지 않고 저녁내 장난치며 하얗게 웃고 있다”(졸시, ‘고무신 엎어 기울이다’전문)
여닫이 문학 산책로가 조성된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변화된 것도 많다. 처음처럼 산책로를 걸으며 시를 읽을 수 있는 신비감이 떨어졌다. 세월 탓이려니 하겠지만 파손되거나 묻혀 지고 풀에 치인 길을 깨끗하게 보수 유지해야하지 않을까. 경쟁처럼 치닫던 지방자치 정책이 사후관리에서 항상 평가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학은 돌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조그마한 걱정을 가지고 율포에 들어서자 해수욕 철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해송 그늘에 들어 휴일을 만끽하고 있다. 욕장 입구에 서 있는 문정희 시인의 시 ‘율포의 기억’이 반갑게 필자를 맞아준다. 보성군 노동면 학동리 호미마을에서 태어났고, 시인의 외가가 있는 이곳 율포에서 그녀의 시를 만나다니 행운이었다.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물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각혈하듯 노을을 내 뿜는 포구를 배경으로/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먹이를 건지는/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문정희, ‘율포의 기억’부분)
시인과 함께 기억하고픈 100년의 해송 사이로 저 멀리 바다는 시를 적시고 있다.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두 시인의 고향 바다는 이렇게 고진한 삶을 내버리지 않고 있다. 아무렇게나 돌에 새겨 방치되듯 한 전시물이 아니라 오래도록 고향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산돌 같은 두 시인의 시가 읽혀지길 고대한다. 갯내음 가득한 시를 안고 짧은 여정 속에서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한 없이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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