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등원시간이 되면 농로길이 환해지고 노래 소리로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차를 태워 보내려는 엄마들의 배웅 길에 나선 아이들이 참새들처럼 재잘거린다. ‘나는야 똥꼬가 될거야, 나는야 똥꼬가 될거야’한 녀석이 부르는 노래다.
유치원에서 부르는 노래를 개사한 모양이다. 별 의미 없이 부르고, 별 의미 없이 듣는다. 아직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을 못하는 일본 엄마를 둔 녀석이 신나게 부르는 노래다. 아마 유치원에 가서도 계속할 모양이다. 다른 노래도 많이 배워 멋대로 불러도 좋으니 내일 아침 새 노래를 또 듣고 싶다.
아이들이 굴렁쇠 굴리며 가듯이 아침을 몰고 간 뒤에 산책을 나선다. 누군가 여름 꽃들은 하얗게 핀다고 했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개망초, 그 꽃 모가지를 꺾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똥꼬 녀석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너 또한 개망초 닮았구나 싶어 꽃모가지 꺾은 것을 곧 후회하였다.
지천에 널브러진 것이 개망초다. 일명 망초속의 귀화식물이다. 귀화식물이란 자연 상태로 국내에 적응된 외래식물을 가리키는데 외래식물이라 해도 증식하지 않으면 귀화식물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귀화식물 가운데 친숙한 것들이 많다. 자운영, 토끼풀, 달맞이꽃, 코스모스, 서양민들레, 개망초 등 어느 곳에 가던지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조선시대 말 개화기 이후 외국에서 들여온 식물들을 귀화식물의 경계로 삼고 있으며 약110종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최근에 정한 귀화식물로는 털별꽃아재비가 있으며, 외래종으로 국내에 유입된 후 폐해를 입히는 것도 적잖이 있다. 그러나 개망초 만큼 슬픈 누명을 쓰고 사는 꽃도 없을 것이다.
개망초는 철도 침목에 묻어온 경인선 철도공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꽃이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인철도회사가 1900년에 경인선을 완공하였으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개망초를 ‘망국초’라고 부르게 된 슬픈 사연이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노란 꽃술을 보며 ‘계란꽃’이라 부르기도 하고, ‘풍년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용과 약용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녹사료로 빠질 수 없는 것이 개망초이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로서 편견(偏見)과 아집(我執) 때문에 편 가르기가 심한 우리 사회에 얼마나 훌륭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보면 볼수록 수수한 꽃과 꽃말에 정이 가는 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을 한번쯤 더 생각해야 할 때이다. 최근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 것을 투표로 결정한 후 국제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민자들에 대한 일자리 문제가 큰 요인 중 하나임이 드러났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구빈법과 같은 복지정책에서 앞장선 나라였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지난날은 자국인들의 생존을 위한 복지정책이었다면 이제는 자국인들의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복지혜택이 부당하게만 느껴지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유럽연합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 채 분노조절장치가 이상증세를 보인 결과이다.
어쩌면 귀화할 수 있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속내가 드러나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다문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 된 것은 결혼이주여성이 급격하게 증가한 200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현행 정책 대부분이 자국민 중심의 동화 정책이라는 것인데, 이보다 사회 안의 다양한 문화의 차이와 자율성을 존중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다문화에 대한 교육을 초등교육에서부터 수반해야 할 것이다.
똥꼬 녀석과 같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외국의 입양아가 아니다. 우리 자식들의 자식들이다. 한층 더 깊게 우리의 얼과 정신을 담아 길러야 할 소중한 자원들이다. 개망초처럼 슬픈 누명을 씌우지 말고 우리의 노래, 가락으로 잘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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