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海漵 칼럼

논물 대는 여심

이메일프린트퍼가기글자크기 원래대로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논물 대는 여심/ 정홍순 시인
2016-06-13 오전 9:39:41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시인

     

     

    논갈이가 끝난 논에 물이 하얗게 차있다. 수면 위로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구름이 두둥실 흘러가는 무논에 기다란 다리로 겅중겅중 걸어 다니는 황새들을 보노라면 한 폭의 산수화가 아닐 수 없다.


    예전 같으면 삭갈이해서 써레질까지 해야 모내기 할 수 있게 골라졌지만 지금은 트랙터로 단번에 끝내버리니 일품을 참 많이도 덜어주고 있다. 이맘때쯤 논두렁에서는 이웃 간에 크고 작은 시비가 벌어지곤 하는데 일명 물싸움이다.


    모내기하려고 거름(비료)을 잘 펴고 골라 논 논에서 물을 빼 가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농사요, 함께 거들어야 하는 것이 농사다. 물 댈 땐 물을 대고, 논갈이 할 땐 논을 갈고, 피살이 할 땐 피살이 해야 농사가 된다. 부지런하고 지혜롭지 않으면 농사일은 가당치도 못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툭하면 농사일이나 해야겠다 말하는데 농사가 인생의 바닥이거나, 싶디 싶은 것으로 여기는 발상을 하곤 하지만 애당초 글러먹은 생각이다. 땅심을 돋우고 쌀을 입에 넣기까지 얼마나 졸경을 치르기에 벼이삭을 나락이라고 다 말했겠는가. 늙어 죽을 때까지 걱정을 놓지 못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묵혀놓는 땅으로 체면이 안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안아 무인한 사람은 땅이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남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잡초를 안 매면 잡초가 이웃 땅으로 넘어가고, 해충을 방제하지 않으면 이웃의 작물이 피해 보는 것을 소인된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농심이란 말보다 귀한 말은 없을 것이다. 진실이 담겨 있고, 기다림이 들어 있으며, 신앙이 깃들어 있는 생명의 말이다. 지금은 이 또한 많이 변했지만 슬퍼하는 이 많지 않고, 경쟁에 떠밀려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모 회사의 라면을 먹으면서 기억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듯싶으나 수입밀가루로 만든 식품을 입에 넣으며 얼마나 우리 농심을 생각한단 말인가.


    “어허어허 만당 같은 집을 두고/천궁 같은 자식 두고/어하넘차어허,/문전옥답 다 버리고/원통해서 못가겠네”이와 같이 <긴 상여 선소리 타령>인 상여소리에서도 문전옥답을 두고 가는 길은 원통한 길이라고, 망자를 보내는 선소리꾼의 메김 따라 구슬프게 울어 보내곤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먹지 않고는 못 산다. 그래서 인간을 쌀 먹는 벌레라하였고 쌀 한 톨이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법을 밥상머리에서 가르쳤던 것이다. 흙에서 배운 사람이 거짓되게 사는 법 모르듯이 지심(地心)이 또한 인성이 되는 것이었다.


    뻐꾸기 낭랑한 농사철이 되니 온 마음과 몸을 다 논밭에 두고 산다. 잠시 긴한 일을 보러 나왔던 이여사가 논물이 걱정돼서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논으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숨이 차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서너 해째 모내기를 할참이다. 그래도 아직은 전답 갈아주는 이가 있고, 모심어 줄 이앙기 얻을 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요즘 농촌에서는 노동의 빈곤이 늘어나고 있다. 노인네들의 일은 괄시받기 일쑤다. 작고 성가신 일은 선불 준다고 해도 마다하는데 말이다.


    나랏일이나 집안일이나 크고 작을 뿐 베틀이 하는 일은 매 한가지다. 여심은 곧 농심과 같기 때문이다. 밤늦도록 베틀에 앉아 짠 베올에 풀을 먹이던 콩풀냄새를 어디에서 맡을 수 있을까.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진다. 청와대가 오늘도 편치 않다. 삼시세끼가 부족한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고프다. 혼자 동분서주 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흉년이 들거나 가뭄이 오면 백성들을 위해 기우제를 올리며 하늘에 빌던 왕의 모습이 왕조시대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물꼬 보러 논으로 달려가던 이여사의 여심은 통할 것이다. 농심을 버리지 않는 지심의 사람이라고 정녕 믿기에.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6-06-13 09:39 송고
     

    '海漵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만 안개나루  (0) 2016.06.28
    연꽃 강의실을 위하여  (0) 2016.06.20
    보리피리 꺾어 불며  (0) 2016.06.07
    엄마 없는 하늘 아래  (0) 2016.05.30
    진달래마을 이장님  (0) 201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