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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漵 칼럼

문학이란 인격을 두고

[외부칼럼]문학이란 인격을 두고
2015년 12월 09일(수) 16:30
정홍순 순천희락교회목사/시인

[전남도민일보]정홍순 순천희락교회목사/시인= 올 해는 유난히 표절이라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거짓된 책장처럼 가슴 아픈 한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면서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할 때가 많다. 경청하기 위해서는 상식과 양식을 쌓아야 하는데 이는 독서가 제일이다.

최근 동아일보에‘시집불패’시대라는 기사가 있었다. 문학의 죽음 속에서 시집들의 수요가 꾸준한 이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의 글쓰기에 글을 빨리 인용하고 전달하는데 시의 문장력이 갖고 있는 힘이 크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시가 삶이라면 나는 시를 버릴 생각이라고 시 쓰는 K형에게 말한 적이 있다. 고매한 예술에 삶이 매몰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버리고 사는 것이 인간다움이 아니겠느냐고 투정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시인의 삶이 어떠하든 읽는 이야 작품을 만나서 공감을 하던지 아니다 싶으면 외면하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 사는 일이 그리 간단하던가. 차라리 작품만 알고 지냈더라면 하는 후회스러운 일이 종종 있기에 나는 K형에게 진정성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던 것이다.

창작이 지어내는 것,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사사로운 시인의 삶이 볼썽사나움으로 비쳐질 때 그의 작품이 허구의 한 맥락으로서 감동을 떨어뜨리고 그의 시가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할지라도 속았다는 말밖에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문학의 윤리 즉, 문학은 비윤리적으로 보편적 도덕률에 대한 저항이라 말하는 하재봉의 견해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로고스가 아니라 파토스(열정)로 한 시대의 정신을 추동해 내는 거대한 힘이라고 한 서영채의 견해에서 나는 문학하기의 사생활이 다만 문학의 도구일 뿐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문학의 배반은 수 없이 널려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생명과 글을 소중하게 보듬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 김준태의 ‘생명주의’에서 생명적이라 할 때 농약을 먹고 자살한 시인 김만옥을 문학의 배반자라 하였는데 지독한 가난에 내몰리던 천재 시인 김만옥은 못할 짓을 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시인 김만옥이 남긴 시들을 읽으면(유고시집, 『오늘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다』) 심미적이고 빛나는 그의 시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불거리는/꽃의/이마를 적시는 鐘소리와,/無垢한 잎들은 잎들끼리/맞부비며 펴 오르는/純粹의,/계집 나이로 치면 펴 오르는 스물의/진한 몸내움새.//흔들리는 꽃들 속에 숨어/邊方의 하늘로부터, 가위를 든 園丁은/가장 淸明한 자락을 도려낸다.(「아침 薔薇園」부분)

위 인용한 시는 1967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 시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시를 처음 접하고 나는 밑줄을 그은 구절이 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 숨어/변방의 하늘로부터, 가위를 든 원정은/가장 청명한 자락을 도려낸다.”이 구절이 얼마나 깊었던지 지금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청명한 자락을 도려낸다는 시인은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다시는 결혼 같은 것 하지 않겠다는 아내와 세 딸들의 곁을 떠난 것이다.

나는 시인 김만옥을 두고 한 편의 시가 물들어 있으나 사생활의 윤리에서는 늘 비관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삶은 짧고 예술은 길다 했던가. 죽도록 시를 썼으면 죽도록 살아야 하지 않는가.

다시 나는 문학이란 인격을 생각한다. 시인 김만옥을 예시 했으나 나를 포함하여 문학하는 사람들의 인격(가면, person)속에 감추어진 내밀한 그 사람의 면면을 다 읽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삶이 문학이면 추하거나, 거짓이거나, 외면하고 싶은 모습들은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소한 건강한 문학을 위해서 혹은 독자를 우롱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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