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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을 지나며 토성을 지나며 정홍순 저 장엄한 대동여지도 한 장 펼쳐놓고 내가 태어난 땅 이름과 생김새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물소리를 밟고 있는 커다란 발 하나가 선뜻 눈에 뛰어든다 태안 백화산이 남으로 흘러내리다 용트림 쳐 겹겹이 쌓은 적돌 내해 천수만을 적돌강이라 불렀다 열린 공간의 땅 최고봉 망재는 74m다 구릉지 사람들 원형 지켜가며 갈돌 패총의 시대부터 살아왔다 개발 피해갈 수 없는 지세 천수만이 막히고 사구가 사라지고 해수욕장 펜션 모텔들이 들어서며 남면은 또 다시 긴 침묵 속으로 숨어들어 가고 있다 양안 사이 두고 쌓은 토성들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고향 백제라서 더 절절하다 양잠리, 달산리, 진산리 금북정맥 길목에 선 작은 토성들 이제 출몰하는 적 누가 지켜야하는가 나부터 처넣을 때인가 보다 토성 아래 .. 더보기
찔레 붉게 피다 찔레 붉게 피다 정홍순 먼 먼 태안에서 순천 갈대마을까지 왔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기찻길 건너 금강하구둑 굽이굽이 넘어 남녘땅에 내렸다 뿌리발이로 몸살 하던 물 설고 땅 설던 겨울 갑절이나 추워 고향 그리워 울기만 했다 조막손만 한 끌텅이 몸부림치다 새순 죽어 자빠지자 바늘땀처럼 살 꿰매며 몸 하나 세워두던 찔레는 죽지 않았다 울화 치는 하늘 접어 고뇌의 땅 차고 일어 만고 끝에 꽃을 달았다 살아서 기적이 아니다 붉은 잎 속으로 차오는 노을 먼 먼 태안 생각하며 정시하고 꽃으로 서서 한 마장 피어나는 모든 것 기적대로 사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뿔 없는 그림자의 슬픔》 (문학의 전당, 2014) 더보기
남생이 남생이 정홍순 남생이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살아보려고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순간을 모면했다 다시 고개 내밀고 생각해본다 눈물이 밥 이상한 밥 먹으며 태어나기 전 죽은 놈이 더 낫다는 말을 읽었다 멀거나 가깝거나 그게 그것인 거리 백 년의 문양 짊어지고 꽃 밟을까 싶어서 발이 저려오는 못난 것 -《향단이 생각》(문학의전당, 2021) 더보기
I Purple You I Purple You 정홍순 유네스코 갯벌 순천만에서 신안 갯벌 만나러 1004대교 타고 안좌도로 간다 굽이굽이 연두 봄 산 해찰부리고 있는 벚꽃이 꽃을 날리고 있다 보라색 섬 꿈틀거리며 목교가 걷는다 꿀풀 도라지 꺾어들고 걸어서 목포까지도 이젠 너끈히 갈 수 있겠다 보라해 섬 끝까지 믿고 함께 할 사랑 박지도 비구니 반월도 비구의 노둣길 흐릿흐릿 전설 이루는 섬 돌망태기 지고 갯벌에 하나로 설 수 있던 보랏빛 보랏빛 그 섬에 봄 묻었다 더보기
내가 다 시원하다 내가 다 시원하다 정홍순 딱지 떨어진 무릎 새 살이 보인다 구부러져 잘 낫지도 않는데 말간 새 살 올라 내가 다 시원하다 안대 풀고 깁스 풀고 껍질 벗겨내니 내가 다 시원하다 머리카락 빠져 죽을병인가 했는데 촘촘 머릿결에 내가 다 시원하다 요즘 나는 용하게 살아가는 나무 덕에 산다 더보기
향단이 생각 가을비 부슬거리는 육모정길, 사람이 적었으면 아마 비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춘향이 누운 자리에서 시작한 길, 주자(朱子)가 발 담근 때 이른 밥이나 먹고 가자 성에 차지 않으면 배만 고프다고, 나물밥에 참기름 떨군다 청국장엔 월매 넉살이 들어가 감질나고, 향단이가 버무린 도토리묵 말랑말랑 젓가락 차며 떨어진다 봉긋 솟은 놋주발 금세 행랑에 던지고, 머루주 한입 헹구며 성삼재 넘는 동안 안개가 자꾸 불러온다 매번 춘향이로 시작하고 춘향이로 끝나는 길, 자전거 탄 씩씩한 여자 알 밴 장딴지, 비늘 털며 소나무가 용천한다 열두 자 노고할미 거웃 상단에서 흘렀으니 저 또한 이 산의 측근, 상상이 떨어지려면 죽어야 수인데, 처박고 살아서 가라고, 길목에 싸놓은 모랫더미 앞에서 브레이크 밟는다 - 「향단이 생각」 전문 더보기
서산 어리굴젓 서산 어리굴젓 정홍순 갯벌 공공사업장에 뿌려놓은 돌 꽃이 얼마나 핀지도 모르게 고향 떠나 살아 온지 40년이나 됐다 푸른 바다는 얼마나 재촉했을까 나는 다시 정 없는 돌 한 짐 지고가 꽃을 붙여야겠다 복사꽃 환하게 봄밤 밝히면 무젓을 먹었다 꽃게 발 깨물며 복사꽃 떨어지고 나면 박속밀국낙지탕을 먹었다 이 간드러진 맛들에서 단연 어리굴젓은 서산이 으뜸이다 전라도 음식 꽃은 홍어요, 말의 꽃은 금메라 하듯 어리굴젓은 내 고향의 음식 꽃이다 파들파들한 물 날개가 살아 시큼하고, 알싸하게 달작하고, 아릿하게 입 속을 유영하며 비위 살려내는 꽃이다 복사꽃 그늘 짙어지면 간월도 옹동할매 돌멩이마다 뿌려놓은 꽃 송이송이 종질개가 춤추고 석담, 갯담 꽃이 난다 꽃이 난다 석방 열고 서둘러 달려 나가는 소녀들의 노래가 .. 더보기
부부 [시와 아침이 있는 풍경] 부부 정홍순 시 당신 닮아서 더 빨갛고, 채 노랗다 밤낮 둘이는 가려운 등 돌려대고 별처럼 긁어주는 꽃 동무 이순 넘겨놓고 알았지만 천연스럽게 귀가 열려 서운한 말 빨갛게 석류 알처럼 박혀 입이 벌어지는데 잘 익었다 하더군 별것도 아닌 말 가지고 흔들면 나도 가시달린 나문데 꽃 속에 들어와 자고 가는 달 혼곤히 삭힌 사랑을 어떡할 건가 나 고흥 남자네 가락동이 물씬거리는 유자 아닌가 [출처] 오코리아뉴스 - http://www.okoreanews.com 오코리아뉴스 정치,사회,문화,경제,연예등소개 www.okoreanews.com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