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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漵 칼럼

약속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약속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정홍순 시인
2017-04-17 오전 9:54:10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봄비가 내린다. 비에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사람이 더욱 생각나는 날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청암대학교 교정에 있는 벚나무가 사방 환하게 피어있었다. 꽃그늘에 앉아 오늘처럼 사람을 생각하다가 짧은 시 한편을 썼다.

     

    피고 또 피고

    다시 또 피어

    꽃이 아닌 적이 없기 때문이다(졸시, ‘꽃이 슬픈 이유’ 전문)

     

    사람이 꽃처럼 피어날 것은 무엇일까. 왜 꽃이 사람을 보고 슬퍼하는 것일까. 사람의 꽃은 다름 아닌 약속이라는 대답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끔은 역설에 기대어 사람을 이해하기도 한다.

     

    약속이라는 말은 장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고 함께 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라 하였다. 살다보면 약속이 강한 사람이 있고, 약속이 약한 사람이 있다.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속을 아무 생각 없이 다루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서 인간관계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된다.

     

    미국 위스콘 주에 한 청년은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 생계를 위해서 정년이 될 때까지 그 꿈을 실행하지 못했다. 62세에 정년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그 후 십년 만에 단 한 사람 결신했다고 선교보고서를 본국으로 보내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십년 동안 선교활동비 지원과 기다리며 후원한 사람들이 더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약속은 맺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아름다운 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속 이행률은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어쩌면 지식인들에게서 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약속 이행율 인 듯싶다. 중국 초나라 계포의 일화에서 나온, 일단 약속을 한 이상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계포일락(季布一諾)’이라는 사자성어가 우리들을 더욱 부끄럽게 하고 있다.

     

    칠 년 전쯤 다음 아고라 이야기에 실린 훈훈한 미담이 생각난다. 새벽 3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회사원이 주유소에 들러 5만원어치 기름을 넣고 생긴 이야기였다. 지갑을 회사에 놓고 와 주유소 직원에게 사정을 말한 뒤 오전 중에 기름 값을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 차량등록증을 맡기고 온 그는 일이 바빠 곧바로 약속 시간에 가지 못했다. 전화로 사정을 다시 말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음료수를 들고 주유소에 들려 기름 값을 계산하고 나올 때 주유소 사장님이 그에게 “약속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고 인사하며 입구까지 배웅해주더라는 것이었다.

     

    외상기름 넣어준 것이 고맙지 왜 사장님이 고맙다는 것인가. 지켜진 약속이 고마운 것이었다. 그렇다. 약속은 그 종류가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 결혼은 남과 남이 만나서 살아가는 약속이다. 대부분 결혼하면 잊는 것이 있다. 결혼을 위해서 산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서로에게서 사랑만을 찾으려고 한다. 상대에게 사랑을 더해주는 것이 결혼이며, 약속을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위한 일이다.

     

    장미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성한 말과 공약들이 남발되고 있지는 않은 것인가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다. 대선과 총선, 민선을 치르면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우리는 또 하나의 꽃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약 이행률은 낙제점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히기를 우리나라 공약 이행률은 51점이 나왔다고 하였다. "더 주목할 건 당력을 총집결한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이행률은 37%로 (전체 평균 51%보다) 약 14%p가량 낮았다"고 설명했다.

     

    약속에 약한 것은 비단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다. 문학인들의 수준도 더 비할 바가 없다. 필자도 20여년 이상 문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의식은 두말할 것도 없고, 거짓이 일상이 돼가고 있는 문학인들을 수 없이 만날 수 있었다. 한 줄의 글을 잘 쓰기보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신의(信義)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먼저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글 쓰는 시대가 올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아마 곧 실행 될 것이다. 어찌하던 글은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성이 없는 로봇의 글을 글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글 쓰는 사람의 생활이나 행적은 차치하고 글만 따로 보자는 평자들도 많다. 아무리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지만 작품은 그 사람의 인격의 분신이어야 한다. “약속” 거기에 정치가 들었고, 문학이 들었다. 참 정치, 참 문학이야말로 대중이 기다리는 이 시대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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