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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漵 칼럼

어린 동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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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동무들에게/ 정홍순 시인
2016-11-21 오전 9:30:15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시인

     

    마로니에 잎이 지고 있다. 가로수 은행잎이 바람에 떨어져 노랗게 길을 물들이는 아침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아침 너희들을 생각한다. 올해는 감사가 더 많은 해가 되기를 너희들도 고대하며 살았을 것이다.

     

    믿으면 믿을수록 더 어두워지는 것은 미신이라고 일찍이 우찌무라 간조는 말한바 있다. 이렇게 칠흑 같은 세상이 될 줄은 차마 꿈에도 생각 못했다. 미신이 득세하고, 급기야 미신정치에 혼을 빼앗긴 이 나라의 뿌리가 오천년이었던가 싶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둠을 뚫고 새 역사를 밝혀야한다는 생명의 명령을 보며, 너희가 손에 쥐고 있던 촛불의 슬픈 눈물을 뜨겁게 흘린다. 생명의 명령은 지독한 것이란다. 그 명령을 함석헌 선생은 독재에 항거하면서 길바닥에 알을 낳는 메뚜기를 보며 전했던 것이다. 몸뚱이가 부서진 메뚜기가 알을 낳기 위해 밑구멍을 움직거리며 흙을 파듯이, 우리 속에 들어있는 생명의 명령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면 말이다.

     

    겨울밤은 더욱 춥다. 라면국물을 홀짝거리며 거리에 선 너희들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다. 뜻 없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하릴없이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미치도록 정의롭게 살고 싶고, 정정당당하게 살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너희들에게 조국이 죽어가고 있으니 너희들인들 맞서지 않겠느냐.

     

    누가 조국의 적이냐. 그것을 알려면 바르게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는 이미 다 너희에게 팔아먹은 기성세대의 전유물이고, 껍데기가 아니더냐. 바르게 만이 살길이다. 태어난 신분에 대하여 원망하지 말고, 의식 없는 자신을 나무라야한다. 이 싸움은 올해로 끝낼 것이 아니다. 평생을 두고 이 나라가 정녕 밝아지는 날까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학창시절 입었던 교복이 생각난다. 그 때는 엘리트교복, 스마트교복이 대세여서 누구든지 둘 중의 하나의 교복을 입었다. 이제는 벗어버린 옷이 되었다. 하지만 너희들 중에 엘리트의식에 물든 국정교복을 입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저주가 걸린 돈은 절대로 복을 가져올 수 없고, 오만함에 싸인 엘리트의식은 악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철저히 돈을 섬기는 장로가 대통령을 하고, 미신에 농단당한 대통령이 벌이는 정치가 얼마나 백성을 위한 것이었던가를 말이다. 속지 말아야했다. 너희들은 속아서는 안 된다. 너희가 공부할 때 제일 중요하게 공부할 것은 사람을 바르게 세우고, 선택하는 민주주의를 공부해야한다. 악의 꽃을 피어서는 안 된다.

     

    수능시험 치느라 고생이 많았다. 대학이 무엇이냐. 네 스스로 크게 찾아 공부하는 곳이다. 공부가 쿵푸라는 것을 너희도 알 것이다. 가정을 건사하고, 앞가림할 수 있는 것이 공부다. 생각을 많이 배워라. 정신을 많이 깨우쳐라. 작금 안하무인한 자들처럼 돼지 같은 눈을 갔지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뜻으로 살아가는 삶이 깃들은 무한한 대한국인이 되어라. 그래서 고양이의 낙법을 보며 너희에게 시 한수를 바친다.

     

    “아이들아,/처마 밑으로 찾아든 괭이가 있거든/그냥 돌려 세우지 마라/서리 맞은 호박넝쿨 같이/모가지에 감고 온 월세방이다/된장 내 나는 토방에 엎어져/고향 떠나지 않겠다고 앙앙거리는/저 달빛의 야윈 꼬리를 봐라/짱짱하던 달이 월세 까먹듯 기울어/졸고 있는 두 눈에/꽃차례 모아 흔들고 있는/수풀의 달이 얼마나 그늘진 가를...../우리나라 산천마다 피고 지는/이름이 괭이눈이란 것이고/담장 밑으로 찍어놓은 점들이/우리들 입속으로 얼마나 시큼하게/들이치던 풀이더냐/아이들아,/우리들의 괭이는 괭이눈이라는/괭이밥이라는 토종의 이름을/거닐고 사는 신통한 할아버지시다/할아버지는 호랑이가 아니다/포효하지 않고 갈그랑거리다/꽃이 되고 풀이되는 달빛의 족보다/수틀린 세상에 척척/산을 뒤집고 토담 뒤집어 놓는 꽃/너희에게 오시는 낙법이시다”(졸시, ‘괭이 손자’전문)

     

    곧 겨울이 깊어지겠다. 오늘 너희는 어디에 닻을 두겠느냐.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꽃피는 동백바다는 잊지 말거라. 한 철에 진다해도 너희는 잊지 말거라.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6-11-21 09:24 송고 2016-11-21 09:3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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