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海漵 칼럼

사회복지사 사명은 언어의 순장(殉葬)이다

  <칼럼>사회복지사 사명은 언어의 순장(殉葬)이다
입력: 2017.01.04 00:00
예전 같으면 하얗게 눈이 내릴 때이다. 김장도 한 해살이 큰살림인 만큼 시기에 맞추려 옆집 할머니는 오늘도 부산하다.
이웃사촌들이 할머니 집으로 품앗이 김장하러 가고 있다. 그래도 시골인심이 남아있어 정겨운 모습이다. 며칠 전에는 대문 앞에 김장하고 맛있는 김치를 말없이 두고 간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 힘들고 어려운 김치는 뭐 하러 담그나 한다. 먹고 싶을 때 한 두포기 사먹으면 그만이란다. 젊은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김장에 가풍(家風)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맛과 그 집 화장실을 보면 살림 사는 법을 알 수 있듯이,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것만이 아니다. 김장은 봄철의 젓갈 담그기에서 초가을의 고추·마늘의 준비, 김장용 채소의 재배 등 준비하는 데에 반년 이상이 걸리는 한 가정의 큰 행사이다.
김장독 뚜껑위에 하얗게 내린 눈을 보며 행복해 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그립다. 겨우내 익어가던 가난한 행복의 맛이 생각난다.
이렇듯 김장은 가족을 위한 사랑을 담고, 이웃과의 정을 담는 우리의 유산인 것이다.
이 작은 가정의 유산들이 이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보전되게 되었다. 김치라는 반찬의 위상만이 아니라 나눔이라는 문화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나눔을 위한 김장문화에는 지역의 맛과 향토 요소들이 배어 있듯이 오랜 우리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 정서를 어찌 상품으로 낙점할 수 있겠는가.
김치는 맛으로 말을 한다. 잘 익은 말로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전에는 단순한 봉사, 남을 돕는 일, 나눔 정도로 생각했었다.
필자에게 왜 사회복지를 공부하려느냐고 물을 때, 선뜻 대답하기를 눈높이를 배우려 한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제 생각해보니 일리 있지만 정확한 대답이 아니었다. 사회복지는 과학이고, 예술이라는 것을 알기 전 대답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공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필자부터가 사회복지에 대하여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예술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의 마인드(mind), 사명, 기술과 능력 등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다. 그 가운데 인격과 관계적 소통에는 무엇보다도 말이라는 언어가 중요하다.
사회복지에 언어가 차지하는 것이 얼마나 큰 비중인가를 간과하는 경우가 적잖다. 사회복지는 자격증으로만 되는 것도, 해서도 안 된다. 원칙에만 집착하여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언동으로 행복한 삶의 질을 높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맛있는 김장독처럼 맛이 깃든 말을 담고 있어야 한다. 하여 송수권 시인이 “시인의 최고, 최후의 사명은 언어의 순장(殉葬)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시인이 아니더라도 사회복지사는 순장의 묘제가 있어야 한다.
순장은 중국 은(殷)나라 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왕이나 귀족 등 고위층이 사망하였을 경우 처자와 노비(때때로 가축)를 장례식에서 함께 매장하던 일이다.
물론 가부장제도가 발달한 세계적인 문화이지만 송수권 시인이 말한 순장은 언어를 통한 명산과 대천, 사람과 정신, 음식과 문화를 만나 나를 찾는 자아발견이며, 원형 탐구의 길이라 했다.
시인은 그래서 생전에 말하기를 “시인이 생경한 언어로 혹은 상업성이 짙은 감각 자극으로 껍데기만 내세워 연명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고 하였다.
한국의 풍성한 문화식탁을 위해서 시인은 김장하듯 뻘, 황토, 대나무의 정신인 남도문화를 구축해낸 것 같이 사회복지사들은 생명식탁을 위하여 언어를 잘 담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한 달이나 지나면 새내기 사회복지사들이 많이 배출 될 것이다. 주·야간 대학에서 졸업을 앞둔 사회복지사들에게 졸업하기 전, 스스로 다시 한 번 말(언어)에 대하여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말본새가 잘 갖추어진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말이다.
사회복지는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과학적 기술은 부족하면 배우고 채우면 돼지만, 예술성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인 만큼 자신이 아니고는 고칠 수가 없다.
못 먹을 김치는 버리면 돼지만 인성을 담는 김장독은 어떻게 깰 수가 있겠는가.
인도 드라마 블랙(Black)이 생각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소녀(8세) ‘미셀’을 위해 ‘사하이’선생님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하고, 세상을 열어주는 보호자가 되는 진정한 교사상, 순장(殉葬)으로 전 세계 10억을 울렸다.
“또 다시 빛이 어둠을 이기고, 소리가 침묵을 이겼다”는 명대사가 생각나는 드라마 블랙처럼 감동스런 사회복지사들이 되어서 우리 사회가 정말 행복해지길 기대한다.

< /정 홍 순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