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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비밀스런 맛

 

 

 

 

시집 <바람은 갯벌에 눕지 않는다>(2020. 시인동네)에 '우리들의 비밀스런 맛'으로 수록.

 

 

우리들의 비밀스런 맛/정홍순

 

 

장 달이는 날은

아궁이 장작 타는 소리와 장 냄새

슬그머니 감출 수 없는 노릇이다

대조리로 거품 거둬내며 내린 장

갯벌에서 갓 잡아온

농게는 농게대로

박하지는 박하지대로 도가지에 넣고

빛깔마저 타고난 장

잿빛 장 부어 게장이 만들어진다

이 집 저 집 밥상에서

게딱지 빨아대는 소리

손가락 쪽쪽 빨며 짭조름한 게살

집게발 깨는 소리가

게 구럭 가득 차던 갯마을

무더운 한철이 넘어가곤 하였다

소리는 사라지고 없지만

사람은 그 소리에 만들어졌다

풀피리보다 더 서럽게

서글서글한 입 속에서 놀던 소리가

장지문 열고 나가는

우리들의 비밀스런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