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사월의 노래

정홍순 2019. 4. 10. 09:34
사월의 노래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9년 04월 10일(수) 00:00
/정홍순 시인
초록의 물결로 사월을 시작한다. 자연이 받은 생명의 명령은 꽃을 너무 오래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은 아쉽지만 꽃이 지지 않으면 사월은 더 아프고 말 것이다.
시인 가객들 가운데 사월을 주제삼아 다루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박목월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고 노래했다. 시인이 사월의 노래를 부를 때는 목련꽃이 한창이었던가 보다. 지구온난화로 꽃의 경계가 무너진 요즈음 목련꽃은 벌써 지고 없는데 말이다.
한 달이나 빠르게 꽃이 피고 있다는 말이 환경의 변화를 입증하고 있는 가운데 이인환은 “꽃길도 걸어본 사람이 걷더라/봄날도 즐겨본 이가 누리더라”고 사월의 노래를 읊었다. 노천명은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면은…/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랑아”라고 사월의 노래를 불렀다.
유난히 사월은 비가(悲歌)가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천개의 바람’을 부르며 슬퍼하는 세월호의 아픔도, 제주 4·3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지 못한 흐느낌도, 4·19혁명으로 일어난 민주항쟁의 울부짖음도 다 사월에서 있었다. 아직도 이 땅 사월은 피 끓는 아픔으로 이처럼 봄을 받아내고 있는 중이다.
사월은 누구에게나 노래 한 곡 정도는 기억되고 있으리라. 필자의 어린 시절 늘 눈물로 들어야했던 노래가 있다. 지극히 개인 가족사적인 일이지만 아버지는 민요 한 대목을 귀에 박히도록 불렀던 것이다. “부령 청진 가신 님 돈 벌면 오고, 공동묘지 가신 님 언제나 오나”하고 우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것으로 신고산타령(新高山打鈴), 신조어랑타령, 아리랑의 대목에 들어가 널리 부르는 우리 조선의 민요다. 이 같이 민요만큼 다양하게 구전되거나 불리는 노래도 없을 것이다. 생활 속에 깊이 안착한 서사로서 한이 서린 민중의 노래가 대중성을 가지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신고산타령이 있다면 또 하나는 대통령 노무현의 ‘부산갈매기’를 들 수 있다. “지금은 그 어디서/내 생각 잊었는가/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고왔던 순이 순이야/파도치는 부둣가에/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1절)
문성재가 부른 이 ‘부산갈매기’는 원래 건달의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함께 국민가요로 불리고 있으며, 부산에 연고를 두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의 응원가로 보통 1절만 불리고 있다.
각 구장마다 응원가가 있다. 인천구장은 ‘연안부두’, 서울구장은 ‘서울의 찬가’, 대전구장은 ‘내 고향 충청도’, 광주구장은 ‘목포의 눈물’ ‘남행열차’가 지역을 대표하는 응원가로, 애향가로 사월의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다.
‘부산갈매기’는 국회의원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도 불러서가 아니라 인간 노무현이 부산갈매기를 부르며 서민정치를 열망하던 그 이상(理想)이 있었기에 부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한국 정치현실 속에 남아 사월을 더 슬프게 하고 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그가 보여준 행보는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아 4·3희생자를 추모하며 국가의 잘못을 구하기도 하였으니 바다를 건너는 갈매기노래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갈매기보다 부엉이로 더 우리들에게 각인되었다. 동학의 성지 고부현과 황토현에서 일어났던 농민혁명의 대표적인 노래 ‘새야새야 파랑새야’에서 파랑새가 푸른 군복의 일본군을 상징한다지만 파랑새(八王새)가 전(全)봉준을 암시하여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들에게는 파랑새가 아직도 죽지 않고 있다. 보름달마저 돌아눕게 하는 새가 부엉이 듯이 부엉이 또한 죽지 않고 있다.
한 많은 이 땅에 파랑새가 울고, 지리산 뻐꾸기가 울고, 봉화산 부엉이가 울고 있다. 지난 71돌 4·3추념식장에서 대통령 노무현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그 만이 할 수 있었던 생전의 모습이었다. 역사 앞에 당당히 걸어갈 수 있었던 그의 발자국 소리가 사월 하늘을 젖지 않게 하던가.
4·3희생자추념식에 또 하나의 노래가 불렸다. ‘나의 살던 고향’이다. 함께 부르며 오열하던 희생자 가족들과 제주 4·3은 우리의 역사임을 재인식하는 동안에도 ‘나의 살던 고향’이 그렇게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사월의 노래로 온 국민의 고향 심상을 가슴에 아리게 새겨놓았다.
사월은 십자가의 달이다. 처절히 십자가 지고 해골산으로 걸어간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죄악을 깨뜨려 놓는다. 사월의 노래를 쓴 작가들이 여럿이듯이 신약성서 마태가 쓴 26· 27장 예수의 수난에 곡을 쓴 음악가들도 여럿이 있다. 그 가운데 바하의 마태 수난곡 ‘오 슬퍼라 너의 지은 죄를’ 선곡하고 싶다.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앞서간 노무현의 부산갈매기, 임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아버지의 타령,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사월에 애창곡 한 곡이 있다.
부르다 부르다 지쳐 잠들은 아기처럼 한인현의 ‘섬집아기’를 같이 불렀으면 싶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이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