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솔정지 과동마을


정홍순 시인
사람 중심으로 창조마을 만들기 거점사업이 전개되면서 그간 국제시대의 세계화를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우수한 것이 세계화를 말해주는 것처럼 너도나도 경쟁에 말려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최고라 여겼지만 행복은 없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상대적이라 한 경쟁에서 자신의 만족, 자족하는 마음으로 행복지수는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경쟁으로 쟁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중앙집권적으로 집행한 강제성을 띈 정책이었다면 오늘날 ‘행복한 마을 만들기’는 자발적으로 행하는 녹색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산업화일변도로 달려간 덕분에 마을과 고향을 잃어버린 고령화 사회를 맞았고, 아름다운 정서인 情이 없어진 피폐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과거를 반성하듯 행복한 마을 만들기와 맥을 같이하는 종교운동이 있다면 ‘마을목회’라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서 개인주의, 개별주의, 이기주의가 극복되고 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이를 위해 대한민국 어디나 건강한 움직임이 비로소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순천 별량면 제석산 아래 순천만을 품고 있는 ‘과동마을’이 요즈음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과동마을도 여느 마을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준비한 사람,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가정과 마을이 달라지듯이 과동마을이 새로워지고 있다.
‘과동 행복마을 가꾸기’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한영만(67) 씨다. 그는 서울에서 목회활동을 왕성히 하다 고향 과동으로 귀농한 목사이기도 하다. 병든 어머니와 누이를 돌보며 고향집 아래채를 손수 개조하여 기도처를 만들었다. 이웃들과 기도하며 시작한 마을목회는 하루하루가 너무 거룩한 일상이 되었다.
마을 총무일과 이장을 맡아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주민들의 민원이나 농사정보, 병원 입·퇴원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몇 년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정작 본인의 몸(간)에 병이 온 것도 모르고 쓰러졌으니 말이다. 수술을 받고 지금도 성치 않은 몸으로 시작한 일이 과동 행복마을 가꾸기 사업이다.
과동 행복마을 가꾸기는 마을 주민들 26가정이 자발적으로 출자하여 생산협동 마을기업(생협)을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서 우선 생산하고자하는 품목은 비파된장, 절임배추, 곶감 등이다. 이를 위해 작업장과 사무실, 장독대를 위한 부지조성을 마을 회관 뒤편에 있는 솔정지에 마련하였다.
“순천에서 살기 좋은 가장 아름다운 마을 한 번 맹글어 볼려고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고 작업장에서 뛰어다니는 한 목사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고향사람들이 각지에서 컴퓨터, 에어컨 등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과동마을은 예로부터 충효가 가득한 마을이다. 또한 자연경관도 아름답다. 솔정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한 폭의 그림을 꿈꾸게 된다. 그곳에서 한 목사는 아름다운 시심을 길러내기도 하고 있으니 그의 꿈처럼 인문학이 살아 숨 쉬는 정다운 솔정지가 될 것이다.
필자는 그의 행보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세속을 던져버리고 제2의 삶을 정진하는 모습에 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사람 한 번 교화시키겠다고 시작한 일이/젖은 혼 마르기전에 농투성이들만이/하늘에 입도할 것 같아/어머니 계신 고향 한 달음에 달려온 것은/생의 일 막이 성공한 것이다/인생은 이순부터라 했것다/영만이 형 만만세/농사꾼 옷 갈아입은 사제를/금치리 동네 사람들은 총무라 부른다/초등학교 동창회 총무, 청주한씨 문중 총무/과동마을 총무, 노인회 총무, 테니스 총무/도합 五총무다/두무포가 내려다보이는 그의 농막에는/제석산에서 부쳐온 봄이 배달되고 있다/통장어탕 한 뚝배기씩 나누고도/향숙과 상희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어머니 한참 때 푼돈 하시던/냉이와 달래 한 소쿠리씩 훔쳐낸다/봄 도둑들에게 인심 푼푼한/홍매, 청매, 수양매가 일품이다/돌담에 기울어 핀 동백 사이로/부샄에서 나온 토종닭이 케케묵은 소리로/호명하는 이름 대답하고/제석산 쇳돌처럼 둘러앉아/영만이 형 흙손으로 답장을 쓰고 있다/싱겁게 한 줄 피죽에다/<사람이 교회다>라고 쓴다”(졸시, ‘농막교회’ 전문)
도시만으로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 자연을 배반해서도 인간의 존재는 불투명하다. 경제나 부의 기득권자들로부터 재분배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 생존권마저 위협당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니까. 이제는 상극의 논리가 아니라 상생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두레와 향약이 있던 우리나라 마을정신이 다시 살아나야한다. 이에 과동마을이 시작한 마을기업(생협)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또한 한 목사의 마을목회가 실천적 목회의 바람직한 대안이며, 진정 가치 있는 사례와 선례로 남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