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호매칼럼>출가(出家)하는 사람, 출세(出世)하는 사람

정홍순 2017. 11. 22. 08:22

 <칼럼>출가(出家)하는 사람, 출세(出世)하는 사람
입력: 2017.11.22 00:00
때가 됐다. 익으면 떨어지고 터지듯이, 때가 됐다. 우려하던 일들이 터지고 있다. 백성을 부려 패도한 정치가 터지고, 신자를 맹인으로 만든 종교가 터지고 있다.
지랄용천검처럼 휘두르던 권력자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성장학(成長學)에 휩쓸린 자본주의 종교가 쌍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연일 큰 사람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서울 명성교회의 세습실체가 드러나며 명성(名聲)을 얻고 있다.
한국교회의 세습과 관련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으니 말이다. 말이야 여러분들의 수고와 협력을 감사한다지만 그 수고와 협력이 사유화된 타락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패망의 부역자, 권력의 부역자, 부패한 종교의 부역자 이 모든 것들이 한갓 시녀처럼 행세하다가 도로무공(徒勞無功)하는 이들은 누구를 위한 인생을 살았던 것인가. 
백성을 지혜롭고, 슬기롭게 만들어야할 일을 담당한 것이 정치와 종교이다. 우리는 이 두 대변혁의 기로에 섰다.
종교지도자들은 그 시대의 출가인 들이다. 출가(出家)라는 말은 기본의미로 집을 떠나다는 말이지만 종교에서는 집과 세속의 인연을 떠나 불문(佛門)에 들어 수행하거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는다는 말처럼 생명의 부를 위하여 사명을 요구받은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이다.
젯밥에 눈이 어두우면 장 볼일이 더 없는 것이다. 구원을 빌미로 요사스레 남이나 속였다면 영혼을 훔친 것이고, 정신을 팔게 한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관계라 할지라도 순기능으로 백성에게 있어야지 백성을 종용해서는 못쓸 일이다. 
저 암흑의 시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베드로성당을 짓기 위해 거둬들인 속전, 면죄부와 사제들의 성직매매가 만연하여 어두웠던 중세시대는 민중의 독이었던 것과 포루투갈산 무기와 신부를 배에 태우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 온 것이 임진왜란이라는 것쯤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종교자유국가다. 국교로 받은 종교는 없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구국으로 일어섰던 종교는 얼마든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건강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종교가 부패하였을 때는 나라도 넘어지곤 하였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는 변혁이지 변질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상식에도 준하지 못하는 행동들이 세계교회의 획기적 사례가 된 한국교단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국가가 걱정해야 할일인가, 사회가 염려해야 할인인가. 스스로 자성하지 않으면 다시 민중은 돌을 들어 칠 것이다. 
이쯤에서 출세(出世)라는 말을 찾아보고 싶다. 출세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신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을 말하고, 속세를 떠나 신선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 또는 속세의 번뇌를 떠나 불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출가든, 출세든 속세의 일을 떠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집을 떠나 속세의 부에 목을 매는 일들이 무슨 진정한 종교의 가치인가를 묻고 싶다.
성장과 아울러 성공이라는 세속적인 단어가 너무 무겁다. 성공이라는 말이 종교용어로 합당한지 모르겠다. 세습이 왜 가능한가. 성공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성공하고 그 자식의 자식이 성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명도 안 돼는 신자나 신도를 이끄는 종교인은 여지없이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교회 관계자는 모 앵커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에서나 쓰는 세습을 쓰지 말고 계승이나 승계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하였다. 
계승이나 승계라는 말을 쓰면 좀 더 신앙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로 명성교회를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교회 내 정당한 절차를 통해 계승한 것이니 문제없다는 반론이었지만 정당한 절차자체가 무엇이든 사회가 문제 삼는 것은 교회법이 아니라 일반적 종교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 그리스도 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리스도 기업, 혹은 주식회사라는 말로 부르고 있는 사회를 향하여 몸집이 크다고 스스럼없는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독선이고, 혐오스런 짓이다. 
어쩌면 단 몇 프로의 성공인자를 가진 사람들의 들러리로 있는 착한 사람들은 너무 슬프고, 고단하다. 비정상적이고, 이단처럼 느껴져 모두가 맹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작아 질 수는 없는가. 그저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고 떠나면 왜 서운하고 섭섭하단 말인가. 
곧 동안거가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될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현필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거지 오장치 짊어지고 나서듯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추한 가면을 벗고 사명을 재인식할 수 있는 선함이 일어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정 홍 순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