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지방사 없는 국가 민족의 역사는 없다

정홍순 2017. 7. 17. 14:02
지방사 없는 국가 민족의 역사는 없다/ 정홍순 시인
2017-07-17 오전 10:38:47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시인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럴 때 박두진의 시 ‘폭양에 무릎 꿇고’를 읽으며 요사스러운 마음을 달래볼 일이다. “우리들의 잘못을 기억하지 말으소서./너무 아픈 채찍을 거둬 주소서./이대로는 한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너무 많은 죄의 덫을 두들겨 부숴 주소서./저어도 아득하게 손닿지 않고,/소리쳐도 너무 멀어 미치지 않고,/몸을 던져 솟구쳐 봐도 너무 거센 풍랑./우리들의 이 시대/우리들의 오늘을 굽어 살피소서.”(박두진, ‘폭양에 무릎 꿇고’, 부분)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화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순천시 해룡면사무소 주차장에는 차가 가득 찬다. 시인의 말처럼 “오늘을 굽어 살피”고자 순천시민대학 제1기 정유재란 역사탐방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11일 개강하여 다음달 8월11일 종강하게 되는 데 그 열기가 대단하다.


    정유재란 역사탐방 강의는 순천시로부터 위탁받아 사단법인 정유재란 역사연구위원회에서 시행하며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임진왜란 7년 전쟁에 관한 이론과 정유재란 전적지 현장답사를 병행하고 있으며, 순천지역 거주자를 우선하고,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국난극복의 교육장, 역사문화 체험의 장으로 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올해는 정유재란이 발발한지 420년이 되는 해이다. 정유재란은 일본의 전라도 죽이기 전쟁이었으며, 재침략의 목적도 도자기, 인쇄술, 성리학을 침탈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또한 정유재란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군과 육군의 연합작전으로 최후, 최대 격전을 치른 국제 전쟁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 격전장의 중심권에 있었던 순천으로서는 정유재란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해이다. 순천부읍성, 환선정, 순천왜성, 검단산성, 이순신장군 백의 종군길 등 역사문화 흔적들을 하나하나 연계하여 정리함으로써 우리의 지방사인 “왜교성 공방전과 광양만해전”을 통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를 이해하고, 국제전쟁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대중화 작업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의 역사에서 정유재란은 순천지역 조상들의 삶의 터전에서 벌어진 전장(戰場)으로 한(恨)서린 희생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쟁사이다. 이를 재조명하고자 효학상장(斅學相長)의 의미를 가지고 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시민대학 1기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가고 있다.


    정유재란은 일본군의 약탈과 살육의 만행으로 쑥대밭을 만든 전쟁이었다. 특히 순천은 전라좌수영 관할구역으로서 해전의 기지였다. 전쟁준비에 순천지역 조상들은 다른 지역보다 더 모병과 군량의 징발로 인해 혹심한 수난과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구국을 위한 희생정신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실정이 아닐 수 없다.


    하여 “지방사 없는 국가 민족의 역사는 없다”는 표어를 두고, 4개월간의 16강좌를 통해 강의와 현장답사를 병행하여 정유재란이 단지 임진왜란에 묻힌 전쟁이 아님을 지역주민과 청소년들에게 알림으로써 올바른 정유재란의 역사적 사실(史實)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역사관련 문화재를 설명할 수 있는 계기를 통해 구국정신, 호남정신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라는 포석정에서 망했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망했다. 그러나 남도풍류의 맥인 칠보면 유상대(유상곡수)의 정신(태산풍류)은 섬진강으로 흘러 순천만과 광양만을 적시고, 이순신 장군의 전몰지인 관음포까지 수분재(물뿌리)에서 발원한 물길이 밀어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남도의 정신(물둑, 물목) 속에 죽지 않고 깃들어있는 것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정유재란은 칠천량 해전의 참패가 원인이라 하였고, 기축옥사로 인한 동인 중 조식의 문하가 대거 몰락한 것, 100년 투쟁으로 이루어 낸 인재양성이 허사가 된 것이라 분석하였다. 그 혼란기에 이순신 장군이 구봉 송익필 선생을 만나 두보의 시로 가르침 받은 것은 해전에서 사용한 병술이 되었던 것이다.


    “독룡이 숨어 있는 곳의 물은 편벽되게 맑고 산에서 나무하는 소리는 정정 울리니 산이 다시 그윽하도다.”는 “수로에 수중철색을 설치하여 적을 붙잡아 두고 가로막아 쳐부술 것이며 일자진을 해안과 산에서 협공할 것이다”라는 가르침이었다.


    침략자 일본은 정유재란 당시 섬진강 물목을 거슬러 올라가며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하고 방화를 일삼았다. 잃어도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정신마저 도려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섬진강 물목, 호남정신이 깃들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약무호남 시무국가)과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건져 올린 정유재란 전쟁사에서 “지방사 없이는 국가 민족의 역사도 없다”는 정신으로 귀중한 역사를 건져 올리고 있는 시민대학에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7-07-17 10:3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