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화가 박명희의 기호적 언어

정홍순 2017. 7. 3. 12:25

화가 박명희의 기호적 언어/ 정홍순 시인

2017-07-03 오후 12:23:10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시인



    김춘수의 꽃처럼 불러 이름대로 되는 지명(地名)들이 있다. 2008년부터 광양경제자유구역 배후단지 택지조성으로 주민들이 이주한 순천시 해룡면 신대(新垈)지구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신대(新垈)는 우리말 이름으로는 ‘새터’다. 일제강점기 때 향매벌에 둑을 막음으로 들이 확장되었다. 새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신대라 표기하고 있으며 이제 다시 그 새터는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통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구축하고 있다.


    경제, 문화, 산업, 교육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신대는 현재 활력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새터로 조용히 찾아든 화가 박명희를 만나러 간다. 화가에게 화실(작업장)을 갖추는 것은 소망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작품도 변변히 내걸지 못하던 그녀가 야심차게 ‘명 아뜨리에’를 새터에 오픈하게 된 것이다.


    박명희가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침묵’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체계적인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인간들은 솔직한 자기감정과 욕구를 침묵 가운데 기호로 표현했음에 착안해서 오늘도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변(辯)이다.


    박명희의 기호적 언어는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담아 세상과 소통하는 장(場)으로서 단순과 질서, 약속과 감성을 자극하는 행위라 말하고 있다. “내 공간에서 춤추는 ‘기호적 언어’들은 인간이 행복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내 모든 삶의 표현방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며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기호적 언어이다. 그 언어가 춤추며 때로는 오래된 미루나무에 버섯으로 피기도 한다. 별량면 전동마을 농막교회(한영만 목사)가 있는 솔정지로 지인들과 함께 나들이 다녀 온 일이 있다. 그 곳에서 미루나무에 핀 목이버섯을 따며 기호적 언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필자는 후에 시 한편을 전할 수 있었다.


    “미루나무, 태풍 볼라벤에 쓰러지기까지/태백산맥 지류 넘나들던 구름떼들/비 갈라 손모심어 키운 들판 낫질로 거둬 공출 실어내던/전동 땅에 서서 그늘이 되었을 터/벌교사람들 피맺힌 항쟁으로 서 있었을 터/다시 거슬러/그늘 속에 묻어두기까지/한 때는 미국깃발같이 마을 입구에 섰던 美柳나무/帝釋山이 갯마중 가는/별량 과동마을로 이주되었다/죽어 다시 사는 오래 기다린 생/뜻 없이 섰다가도 뜻이 되는 나무인생/그 많은 말들/단단한 크기로 써낸 문장으로 읽히고 있다/수려한 문장마을 과동/아름드리 소나무 연못에 별 띄우던 솔정지 있었고/허벅지 살 떼서 간병하신 창원박씨 할머니 계셨고/할머니 효열은 청주한씨 일가 기적비로 서고/미루나무는 솔정지에 서서/기호적 언어가 되기까지/돌에 귀가 열리듯 나무에도 귀가 열리는 법이었다/비쩍 말라붙은 버섯/고흐가 귀를 잘라 들은 언어가 무엇이었을까/150년 전쯤 참을 수 없는 난청의 사내/서른일곱 살의 색채가 기호마을 과동에서 피었다”(졸시, ‘목이’ 전문)


    언어의 기호적 특성은 사회적 약속 체계이기 때문에 개인이 함부로 언어를 바꿀 수 없으며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함에 따라 언어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언어가 가진 기호적 특성을 회화라는 기법으로 구사하고 있는 박명희의 작품은 다분히 영성적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이랄지 ‘단순’과 같은 영성적 구도(求道)작업이 함축되어 있는 박명희의 그림에는 내면생활과 외면생활의 요소인 영성적 면모를 오랫동안 기호적 언어로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을 확연히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녀의 작품에 압도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음성은 없어도 말을 건네고, 귀가 없어도 들을 수 있는 언어적 소통으로서 박명희의 기호적 언어는 소리상법의 시와 같다. 그늘, 즉 진정한 인간의 삶 속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함께 말을 걸고 있는 기호의 다양한 방법은 직선으로 꽂히는 것이 아니라 곡선(생명)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처를 씻어주고, 고통을 위로하며, 따뜻한 시선을 건네고 있는 것이 박명희의 특징으로 다가온다.


    이제 박명희는 순천만이라는 생태적 언어를 광활하게 펼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7월10일-28일) ‘밀라노 한국미술 대축전’에 순천만의 언어를 보내게 됐으니 말이다. 전시될 작품은 ‘추억’이란 제목으로 전방위로 펼쳐진 순천만의 생생한 모습(추억1-6)을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 ‘명 아뜨리에’는 순천이 자랑하는 문화의 전당이 될 것이다. 구도심을 연계하는 순천의 문화공간으로서 그 역할이 주목되고 있는바 오늘도 그녀는 9월 중 평택에서 있을 ‘서해국제아트페어’ 개인전시회를 준비하느라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순천은 화가 박명희와 같은 이들이 있어 오늘도 행복한 도시로 살아가고 있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7-07-03 11:41 송고 2017-07-03 12:23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