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友林)과 평사(平沙)의 우정

정홍순 시인
인생은 매듭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때로는 매듭을 풀며, 때로는 매듭을 짓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 하였다. 매듭을 풀고, 만들며 사는 것이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지 않고 사는 것이다. 틀에 박힌 방식과 생각(매너리즘)으로 살다보면 곧 후회하게 된다. 좀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하고 말이다.
꽃과 같은 날들은 많지 않다. 꽃과 같은 날들을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이벤트(event)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함께 무엇이든 나누어볼까 생각하고 기획하는 것 말이다. 중요한 시간, 기념될만한 때를 기념하는 것, 함께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사는 재미다.
대나무가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대나무 마디(매듭)는 우리에게 많은 삶의 이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처럼 인생은 매듭을 위해 노력하고, 의식하며 살아야한다. 내 일이 아니면 상관없다 여기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태도는 멋을 모르는 사람의 행동이다.
사람이 살면서 향기 나는 멋이 있다면 만남의 사건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이 만남의 사건은 소소한 것일지라도 잊어버리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서로의 마음이 닿는 정(情),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하게 사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정을 나누며 살아온 것이 우리 민족이다.
당파를 초월한 우정, 오성과 한음인 이항복과 이덕형의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에 빗대 ‘오한지교(鰲漢之交)’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당보다는 나라의 안위와 발전을 먼저 생각한 진정한 재상들의 우정을 기리고 있듯, 우리지역에 아주 귀한 우정을 나누고 사는 오한지교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난 6월 3일, 제6회 2017 대한민국모범기업인대상과 제5회 2017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을 각각 수상한 김영문(66세, 농업)씨와 김용수(65세, 언론인)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은 중학교 동창으로 만나 지금까지 서로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지내는 돈독한 사이다. 서로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나란히 영예로운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참으로 특이하기만 하다.
우림(友林) 김영문 씨는 임학을 전공한 지식농업인이다. 특히 고흥석류에 대한 남다른 연구와 투자로 묘목재배성공과 아울러 생산증진에 힘을 써 그 성과를 인정받아 고흥군 석류소득 왕으로 선정된 바 있고,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상록수 삶의 장본인이기도하다. 또한 귀농, 귀촌 정착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 3,4년 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평사(平沙) 김용수 씨는 호남매일 논설위원으로써 30여년 지역정론을 위해 일해 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발전을 위해서도 한결같은 길을 걸어오고 있다. 또한 지역문학 발전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향토시인으로 《밤비》 《옴서감서》 《훔쳐보는 눈빛》 《연기 꽃》 등 시집을 상재하고 있어 시인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림과 평사는 밥친구, 술친구 정도로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 온 세월이 누적된 우정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손을 잡아주고, 병들어 아플 때 삼 한 뿌리라도 입에 넣어주는 그런 관계를 나누고 있는 사이다. 요즘 흔해빠진 여느 사람들처럼 어쩌다 안부보다 먼저 필요사항을 일별하는 무례하고 속 보이는 관계가 아니다.
추구하는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우림과 평사에게서 우정의 참된 모습을 볼 때마다 필자는 귀한 인연에 귀감을 얻고 생의 희열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저러한 우정이 될 수 있을까. 수없이 엿보면서 받아낸 답이 있다. 서로를 존중히 여기며, 사심을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없는 것 네게 있고, 네가 없는 것 내게 있는 것으로 언제나 무상의 배려를 베풀며 마디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이정록의 시 ‘마디’가 생각난다. “대숲 속에는 마디를 모르는 것들이/바닥을 덮는다, 켜켜이/썩어가는 이파리에게 마디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하얀 대뿌리, 그 잘디잔 말씀이 뻗어나간다.”(이정록, ‘마디’ 마지막 부분)
마디(매듭)를 모르는 것들이 대숲 바닥을 덮는 것처럼 매너리즘에 빠져 사는 우리들에게 단순한 사물의 시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을 받아 혼곤하게 흔들어 놓고 있다. ‘잘디잔 말씀이 뻗어나간다’니 시인을 통해 삶의 이치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우림과 평사가 상을 받기까지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받게 된 사실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당신들이 받으면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할 것이라고 사양하던 아름다운 모습에 더욱 상의 의미가 값지다. 단순히 상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지역을 빛내어 널리 알려진 우림과 평사의 우정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 여겨 몇 자 적어두는 것이다. 다윗과 요나단 같은, 오성과 한음 같은, 우림과 평사의 우정은 또 하나의 전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