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우리들의 봄은 아직도 참담하다

정홍순 2017. 3. 21. 07:11
우리들의 봄은 아직도 참담하다/ 정홍순 시인
2017-03-20 오후 9:56:22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정홍순 시인

     

    산수유가 나무마다 꽃들로 한창이다. 앵두나무에도 물이 올라 꽃봉오리가 가득하다. 때늦은 감기를 앓고 입술까지 지었다. 기력을 잃고 있는 필자에게 볕이 좋으니 운동 삼아 초석잠(草石蠶) 캐러가자고 지인이 동행을 권한다. 순천만 갯바람을 맞으며 산자락에 올라 현장에 당도하니 더없이 지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동행의 고마움도 있지만 순간의 봄을 놓치고 말 일이었구나 싶은, 아차 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초석잠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더 관심이 가는 식물이다. 멧돼지들이 겨우살이 하느라 파놓은 흔적으로 보아 초석잠이 더욱 궁금해졌다. 누에같이 생긴 모양새도 재밌고, 치매나 혈관계통의 약재로 널리 쓰인다는 지인의 설명을 들으며 한 소쿠리나 캤다.


    초석잠을 석잠풀, 식물의 동충하초 혹은 총명약초라 부르는데 풀 아래 돌처럼 누워 잠들어 있는 누에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였다. 초석잠은 벌써 새싹을 준비하고 있었다. 땅 속에서 봄이 오는 것을 알고 깨어나는 누에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봄이 대지를 덮어가는 것인지, 대지가 봄을 받아들고 살아나는 것인지, 생명의 힘에 다만 둔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싶어 잠시 숙연해졌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에 흙을 헤치며 필자는 봄 앞에서 한 가르침을 받았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 체인지(Change)라는 말을 재밌게 설명하던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교육의 근간을 이루었던 지난날 우리들에게 익숙한 말 중에서 지덕체(知德體)라는 말을 이제는 달리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되는 사회를 이끌어가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고(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知)는 그의 논리(체인지=Change)가 매우 설득력이 있음을 알았다.


    산자락 흙을 헤치며 유영만이 말한 교육공학을 몇 번이나 되뇌곤 하였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탄핵을 인용하여 판결하던 순간, 가슴이 얼마나 두근두근했던가. 필자는 남도 땅 끝자락에서 초석잠을 캐는 민초의 하나이지만 새순을 들고 나오는 계절의 진실을 보았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순환의 삶의 멋을 틀어쥐고 봄의 역사를 쓰고 있는 식물들이 위대한 것이었다.


    현장교육, 이성을 가지고 말의 논리가 적합해야 할 우리들의 봄은 아직도 참담하다. 크게 잘 못했으면 크게 잘못했다고 왜 진실하지 못할까.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는 국민이란 말인가. 아직도 국민의 수준이 이성 없는 짐승 같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린세대들이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싶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점점 큰 나라를 만들어가려면 죄 있음을 말할 줄 알고,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정직한 국면이 있어야한다.


    전두환 씨가 백담사로 가면서 국민에게 용납이란 말을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용납은 덮어두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용납이 아니라 용서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 번도 용서를 구하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는 것이 실패한 정치사다. 더 이상 그런 정치를 국민은 따르지 않는다. 정치인이 정치하려하기 때문에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5월 9일, 대선공휴일로 정한 날이다. ‘장미 대선’이라 하니 꽃을 들고 나올 사람이 누구일까 달장간은 또 정신이 없을 것 같다.


    농로 길로 전동차 타고 노인이 지나간다. 올망졸망 봄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촌락이 슬프게 눈에 들어온다. 삼성동 대통령의 사저와 비교가 되는 풍경이 눈물겹도록 펼쳐져 있는 봄이 아프기만 하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원망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보다 낫을 길에 떨어뜨리고 가는 노인의 하루가 더 고되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일일까.


    역사라는 말 한마디 외지 못하는 촌부의 하루에 봄빛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촌부는 꼿꼿하게 일하지 않았다. 허리가 휘도록 엎드려 땅의 일을 빌 듯이 수행하였다. 이제는 전동차에 몸을 싣고 들에 나오기까지 말이다. 땅자리 같이 작아진 육체에 내리는 봄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오월이면 다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해 죽는 사람은 많지만, 여러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변화라는 말이 봄꽃처럼 예쁘다. 시절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듯이 기회의 순응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를 바꾸는 선거혁명을 이루어야한다. 봄빛은 오래 있지 않는다. 그러니 어질 뿐만 아니라 미쁘기도 한 사람을 통하여 이 아픈 봄을 치유하고, 용서를 가르쳐 낼 수 있는 정의(仁)의 나라를 세워야한다. 참담했던 날을 생각하니 초석잠 씻는 손이 부르르 떨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