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윤석중 선생의 동시 ‘달 따러 가자’를 조용히 읊어 본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장대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뒷동산에 올라가 무등을 타고/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밤이면 바느질도 못한다더라./애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드리자.”이시 말고도 윤석중 선생의 달을 소재로 한 글들은 읽을수록 곱다는 속내를 감출수가 없다.
매미소리가 숨어들고 벌초하는 기계소리가 요란스럽다. 추석이 가까워진 것이다. 이산 저산 묘지들은 달같이 둥글둥글 예쁘게 잘 다듬어졌다. 얼마 후에는 벌초하는 것도 신기한 일처럼 쳐다보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석은 가을의 중간을 의미하는 말로 한가위라든지 중추절로 말하고 있으며, 솔잎을 깔고 쪄낸 반달 떡 송편을 만들어 먹는다.
삼국시대 백제 의자왕 때 궁궐 안 땅속에서 거북등이 올라왔다고 한다. 그 거북이 등에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고 쓰여 있더란다. “만월인 백제의 의자왕은 둥근달이 환하게 뜨니 이제부터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고, 신라는 반달이기 때문에 앞으로 차차 커져서 만월이 되므로 승승장구하는 역사는 신라 쪽에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는 이야기가 송편의 유래이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는 둥근달이 있어 낭만이 있고, 역사가 있고, 삶을 노래하는 시가 있다. 더러는 아직도 달에 빠져 고리타분한 몽상에 젖어있는 것이냐 하고 웃어넘길 것이다. 그러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생각이라 해도 달빛을 차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를 피해 숨을 수는 있어도 구름 아니고는 달을 가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올 추석은 뒷동산에 올라 달을 보자. 그리고 땅에서 겸허히 하늘을 올려다보자. 모두 다 참 많이 반성하는 가을이 되자. 백성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부모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식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직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나라와 민족, 고향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달빛이 부족하거든 순천만 노월마을에 와서 갈대 사이로 비쳐드는 달을 보시라. “노월 만큼 달 좋은 데도 없겠지/마분지 깔아놓고 살살 쓸어 담으면/그게 순천만 달이라는 것을/아는 이도 없겠지”(졸시, ‘노월마을’부분) 노월에 뜨는 달을 놓치거든 순천만정원 서문 밖 동천이 흐르는 오림정(五林亭)에 올라서 달을 보시라.
오림정은 한국 정원수정원의 원조라 일컬어지고 있다. 무오사화가 일어나면서 낙향하여 신윤보 선생이 지은 정원이다. 순천의 팔마비 만큼이나 청렴결백한 선비정신이 깃들인 정원에는 그에 걸맞은 소나무(松), 매화나무(梅), 비자나무(榧), 유자나무(柚), 대나무(竹)등 오림(五林)을 심었다. “뜬구름도 머물다 가는 동천 벗하여/강상에 정자 짓고 오림이라 하였다//1. 소나무/늘 푸른 잎으로 자식들 둘러치고/껍질로 품어 썩다보니/청솔도 구멍 나는 일이 있다”(졸시, ‘오림정’부분) 오림정에서 동천에 비친 달을 보며 누가 음풍농월이나 헤적거릴 것인가.
아침이면 순천의 뒷산 남산으로 여직 기울지 않은 달을 지고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달과 함께 착하게 사는 이들이 오르는 남산에서 달을 한번 보자. 모락모락 피어나는 힘겨운 숨소리를 한번 들어보시라. “한발 한발 달 궁둥이 쳐다보며 올라서야/산정바람이 찰지게 와 닿는 덕에 약수 한 바가지/끝이 무른 속 짜르르 건사할 목숨 생각고 웃어//한나절은 사람이 먹고 한나절은 산이 먹으며/서로 잊은 적 없이 철석같이 사는 남산족속들/벌건 대낮에/궁둥이 달과 놀아나는 숨박질이 어디 이만할거나”(졸시, ‘남산에 달이 뜨고’부분)
어디 순천에 뜨는 달만이 낭만과 역사, 시가 있겠는가. 삼천리금수강산인 우리나라의 달 만큼 아름다운 달도 없을 것이다. 올 추석은 아무리 바쁘고 정사가 궁해도 너 나 할 것 없이 둥근달 한번 쳐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싶다.
제 소견에 옳은 대로만 하지 말고 백성의 뜻이 가득담긴 달처럼 다스리고 섬겼으면 싶다. 그리고 서로 비추어 더 빛내는 민의의 정치가 되기를 모두 힘썼으면 싶다. 또한 아무리 힘겨워도 소망의 떡을 함께 나누듯이 더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여유로운 인생을 위하여 달 한번 쳐다보고 힘을 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