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꽃잎에도 핏줄이 있다
정홍순
2016. 7. 26. 07:38
[외부칼럼] 꽃잎에도 ‘핏줄’이 있다
정홍순/시인 |
2016년 07월 25일(월) 2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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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민일보]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이다. 그러나 만남 뒤에 오는 상처들은 헤어짐의 아픈 흔적보다 더 큰 상처로 남을 때가 종종 있다. 진솔한 만남이 아니었을 때 그 사람의 인격이 들여다보이고 가면을 벗어버림 같이 포장된 관계가 드러나면 거기서 남는 것은 외상(外傷)이 남는다.
사람이 상처받는 일에 사람 말고 다른 것이 얼마나 더 있던가. 이별을 예고하며 차라리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는 예수 밖에 없다. 이런 승화적인 이별이야 상처보다는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사랑하니 떠난다는 말로도 상처는 매한가지다.
누군가는 풍경소리 가득한 자연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잠시 사람들의 곁을 떠나 “풍경소리만 들리는 자연속이면 좋겠다.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 자연속이면 좋겠다. 혼자 나를 만나면 좋겠다.”고 말이다.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산길을 걸어 조계산 천자암 쌍향수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조계산은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이다.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봄철의 벚꽃·동백·목련·철쭉, 여름의 울창한 숲, 가을 단풍, 겨울 설화 등이 계곡과 어우러져 사계절 모두 독특한 경관을 이루는 산이다. 또한 송광사·선암사 등의 유명한 사찰과 많은 문화재가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 가운데 사람의 예를 배우기 위해 천연기념물 제88호인 곱향나무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에 오르는 것이다. 산 중턱에 차를 대놓고 잠시 경사진 길을 숨이 차오르도록 오르면 팔백년의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출중한 가르침의 이야기인가. 이 한마디의 이야기를 만나고 하산하는 길은 조계산이 우리를 부르는 까닭임을 알 수 있다.
산길에는 노랗게 꽃이 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꽃이나 외관으로는 알 수 없는 피나물의 상태이다.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말, 그 말이 사실이었다. 꽃잎에도 피가 흘렀고, 흘렀다는 것을 알게 해준 피나물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꽃도 지고, 잎과 줄기도 없어지고, 긴 삭과의 열매만 만들고 있는 피나물에서 한철의 인생을 배운다. 피같이 진한 만남에서, 헤어짐으로 누가 그것을 소유라 할 수 있겠는가. 피를 나눈 자식도 내 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영혼을 목적으로 한 만남에 누가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던가.
사람에게 소속은 있을 수 있지만 소유는 있을 수 없다. 특히 종교에서 말이다. 내 신도, 내 신자란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할 수 있다면 그 영혼을 갈취한 것이다. 영혼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종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속지 말아야한다. 영성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친구 이상의 관계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당신에게서 영성 지도를 받지 못하겠노라하면 두 말할 것 없이 보내주는 것이 옳은 처사이다.
신도나 신자를 두고 서로 싸우는 일은 너무 유치한 일이다. 그것은 신앙이라는 흐름을 모르는 것이며, 출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속인들의 행동들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다 했듯이 인연한 삶의 과정에서 맹목적인 욕심을 버려야한다.
꽃잎에도 핏줄이 있듯이 인생에는 아름다운 인연이란 혈관들이 있다. 자연스럽게 꽃이 지고, 잎과 줄기가 떨어지고, 씨앗을 남기는 것처럼 외상(外傷)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의 열매를 남기는 피나물과 서로 존중히 기대어 도를 이루어가는 조계산 여름 숲으로 마음산행을 떠나보시라, 혼자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상처받는 일에 사람 말고 다른 것이 얼마나 더 있던가. 이별을 예고하며 차라리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는 예수 밖에 없다. 이런 승화적인 이별이야 상처보다는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사랑하니 떠난다는 말로도 상처는 매한가지다.
누군가는 풍경소리 가득한 자연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잠시 사람들의 곁을 떠나 “풍경소리만 들리는 자연속이면 좋겠다.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 자연속이면 좋겠다. 혼자 나를 만나면 좋겠다.”고 말이다.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산길을 걸어 조계산 천자암 쌍향수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조계산은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이다.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봄철의 벚꽃·동백·목련·철쭉, 여름의 울창한 숲, 가을 단풍, 겨울 설화 등이 계곡과 어우러져 사계절 모두 독특한 경관을 이루는 산이다. 또한 송광사·선암사 등의 유명한 사찰과 많은 문화재가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 가운데 사람의 예를 배우기 위해 천연기념물 제88호인 곱향나무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에 오르는 것이다. 산 중턱에 차를 대놓고 잠시 경사진 길을 숨이 차오르도록 오르면 팔백년의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출중한 가르침의 이야기인가. 이 한마디의 이야기를 만나고 하산하는 길은 조계산이 우리를 부르는 까닭임을 알 수 있다.
산길에는 노랗게 꽃이 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꽃이나 외관으로는 알 수 없는 피나물의 상태이다.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말, 그 말이 사실이었다. 꽃잎에도 피가 흘렀고, 흘렀다는 것을 알게 해준 피나물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꽃도 지고, 잎과 줄기도 없어지고, 긴 삭과의 열매만 만들고 있는 피나물에서 한철의 인생을 배운다. 피같이 진한 만남에서, 헤어짐으로 누가 그것을 소유라 할 수 있겠는가. 피를 나눈 자식도 내 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영혼을 목적으로 한 만남에 누가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던가.
사람에게 소속은 있을 수 있지만 소유는 있을 수 없다. 특히 종교에서 말이다. 내 신도, 내 신자란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할 수 있다면 그 영혼을 갈취한 것이다. 영혼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종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속지 말아야한다. 영성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친구 이상의 관계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당신에게서 영성 지도를 받지 못하겠노라하면 두 말할 것 없이 보내주는 것이 옳은 처사이다.
신도나 신자를 두고 서로 싸우는 일은 너무 유치한 일이다. 그것은 신앙이라는 흐름을 모르는 것이며, 출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속인들의 행동들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다 했듯이 인연한 삶의 과정에서 맹목적인 욕심을 버려야한다.
꽃잎에도 핏줄이 있듯이 인생에는 아름다운 인연이란 혈관들이 있다. 자연스럽게 꽃이 지고, 잎과 줄기가 떨어지고, 씨앗을 남기는 것처럼 외상(外傷)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의 열매를 남기는 피나물과 서로 존중히 기대어 도를 이루어가는 조계산 여름 숲으로 마음산행을 떠나보시라, 혼자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