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순천만 안개나루

정홍순 2016. 6. 28. 08:05

[외부칼럼] 순천만 안개나루

정홍순/시인

2016년 06월 27일(월) 23:57
[전남도민일보]아침 안개가 이사천에 피어오르면 상사댐 아래로 펼쳐지는 운무의 춤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름 깊은 밤이 지나고 벚꽃과 어우러져 피는 개천의 아침은 생명의 탄생과 신비가 또 하나의 순천을 낳고 있는 것이다.

어찌 아침 안개가 개천에만 있으랴, 자욱하게 개펄을 덮어오는 순천만의 해무는 광활한 시민의 이부자리와 같다. 새들이 훨훨 날며, 짱뚱어가 눈을 뜨고 펄펄 뛰는 바다가 얼굴을 씻고 나오는 날이면 생의 간절함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물길 따라 학의 날개 같고 선녀의 옷자락 같은 해무의 순천만을 보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수단이 오로지 시뿐일 때 펜을 잡아야 한다.”고 한 마야코프스키의 말이 생각나 한 수 적는다. “안개 속에 쫓아와/학이/길을 일러준다//날개 펴고 날개 접고//팔 펴고 팔 접고//펴고 접고/펴고 접고//금세 나도 날 것 같다//빈 배 홀로 강에/나는 갈 것 같다//아, 기막힌 꿈”(졸시, ‘순천만 51-안개나루’전문)

어느 시인은 비가 오면 순천만에 가서 빈 배를 구르며 놀다 온다 하고, 또 어느 시인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술기운에 속말 다 쏟아놓고 온다 하고, 송수권 시인은 “갈목비로 싹 쓸어버리고 싶은 그 갈밭 사잇길에는/오늘도 사람들이 넘실거려 몸살을 앓는다”(‘갈목비 1’ 부분)하였고, 필자는 바람 부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대대선창까지 달려가곤 한다.

페달을 밟으며 방죽길 따라 육지의 끝에 서면 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만나고 오기에 어느 때부터인가 ‘언제나 처음처럼’ 이라는 순천만이 준 생각 하나를 지니고 산다. 이처럼 순천만에 이르는 자전거 길은 또 하나의 힐링(Healing)의 길이며 해무에게 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13일자 모 일간지 기사에 순천‘자전거도로’유명무실 이라는 톱뉴스가 보도된 바 있었다. 순천시가 ‘온누리 공영자전거’ 사업시행 결실이 있기 전 기사이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자전거타기 제일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동천과 순천만을 잇는 자전거도로 24km는 어느 환경과 비교할 수 없는 순천이 자신 있게 내놓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자전거 타고 바람을 가르면서 가다보면 무인궤도차가 지나가고, 온 몸을 흔드는 갈대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파랗게 물들어가는 여름을 만나게 된다. 그 곳에 순천시와 프랑스가 상호우호교류 협력증진 차원에서 2009년에 준공한 낭트정원이 있다.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순천이 자랑하는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작가 정채봉의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어 얼마나 멋들어진지 알 수 없다.

시간도 삶도 안개 되어 떠돌던 음험한 공간, 김승옥은 ‘무진기행’을 통해 가장 슬픈 힘을 쏟아놓았는데 그 공간적 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곳에서,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한 정채봉의 영혼의 고향냄새를 한 없이 맡을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이 멋진 순천문학관을 갯내음이 녹아드는 곳에 자리한 것은 개펄이 숨 쉬는 생태수도의 문학정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생명의 정원을 품고 있는 문학의 고장 순천에서 자전거타고 하루를 조용히 관조할 수 있다면, 어느덧 안개가 걷히고 무안한 동심에 들어 영혼의 구원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을 통한 배움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산교육이라 믿어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면 ‘문턱이 닳도록 와서 마음껏 놀다 가거라.’속으로 거나하게 인심을 쓰고 싶어진다.

페달을 밟아주어야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는 자전거처럼 인생의 두 바퀴를 굴리면서 안개와 해무가 있는 순천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볼 것을 적극 권하고 싶다. 안개나루라는 공식 명칭은 없지만 안개 낀 천변과 해무의 바닷길로 달려보는 것 또한 ‘무진기행’을 읽듯이 인생페이지를 넘겨보는 것, 슬픈 힘을 쏟아보는 것이라고 오늘도 순천만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