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아버지 흙발 터는 남포미술관
정홍순
2016. 4. 25. 20:23
[외부칼럼] 아버지 흙발 터는 남포미술관
정홍순/시인 |
2016년 04월 25일(월) 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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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민일보]사전선거를 마친 지인들과 비가 내리는 수요일에 고흥을 다녀왔다. 흩뿌리는 빗줄기 속에서 선거이야기는 금세 대자연의 봄을 읽느라 몸과 마음이 유소년들처럼 들떴다. 행복의 발산지 고흥에 들어서는 것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이처럼 기분 좋은 나들이가 아닐 수 없다.
팔영산의 정기가 흐르는 북향의 도량 능가사를 돌아 나오다 굽이쳐 흘러넘치는 푸른 물굽이 남해의 눈빛에 빠져들었고, 산자락에 자리한 정겨운 미술관 <남포미술관>에 들렀다. 곱게 석분이 다져진 운동장에는 비를 머금은 자란이 온몸을 흔들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미술관에 우리들은 첫 손님이 되었고 관장 곽형수 화백을 뵙는 횡재를 누렸다. 관장께서는 제1전시실부터 제4전시실까지 한 작품 한 작품 한 시간이 넘도록 우리를 이끌어 그림과 인생, 역사를 안내해 주었다. 살다보니 이런 호사를 다 누린다고 지인들은 연신 감탄을 연발하였다.
한 때는 학생들이 뛰어놀고 학업에 정진하던 영남중학교, 선친이 남기신 학교를 미술관으로 고쳐서 문화와 예술의 열정을 쏟아놓은 남포미술관이 작년 1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전을 여덟 차례나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미술계의 업적으로 남는 치적임이 분명하다.
특히 2013년에는 국립소록도병원 뒤편 대형벽화 ‘염원·소록도의 꿈’을 제작하기도 하였고, 연간 관람객이 30,000명이 넘는 명실 공히 남도의 자랑스러운 미술관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흥의 미술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술관이 된 것이다. 자랑스러운 미술관을 필자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오지호 화백 기념관에 가면/모후산 메주콩 삶는 냄새가 난다/남농 박물관에 가면/노적봉 불끈 솟은 남근을 본다/순천만 화포에 가면/쪽빛 수조 속에 있는 여인이 있다//백민 미술관에 가면/보성강 씻어 맑은 절창의 소리가 들린다/남포 미술관에 가면/팔영산 아버지 흙발 털고 계신다/봉화산 아래 화포에 가면/아침 해 이고 나오는/그녀가 있다”(졸시, 「순천만 12-화포에 가면」전문)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자 한 곽 관장의 예술정신은 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곧 시이듯이, 사람이 곧 미술이다’를 담아낸 결실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터에서 일하다 흙발을 털고 들어와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대하며 인생을 논하기도 하고, 쉼터삼아 휴식을 취하다가 일터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팔영산 자락에 펼쳐있는 것이다.
미술관에는 지역 작품만이 아니라 세계를 아우르는 현대미술작품 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오직 작품을 관람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하고 싶은 강한 메시지가 있는 곳이다. 그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기존 매다는 작품에서 거는 작품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곽 관장은 설명을 더해 주었다. 미술은 잘 몰라도 시선이 줄에 빼앗기지 않는 소통의 자세는 너무나 흡족하고도 남는 일이였다.
남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한 작품들을 돌아보며 예술을 통한 무한한 상상이 우주를 향해 대한민국을 쏘아 올리는 꿈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 남포미술관만이 추구하는 정신은 상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토록 고전될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하에 지극히 한국적이며 남도의 정신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킨 석현 박은용 선생의 작품은 남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미 중 하나이다. 또한 청각장애를 가지고 고향 외나로도에서 작품 활동만을 일관한 최주휴 선생의 작품들은 남포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명작들이다.
고흥에는 이처럼 팔영산 자락을 감돌며 인생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두 도량이 있다. 능가사가 있고, 남포등처럼 낙후된 지역을 밝혀주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남포미술관이 있어 우주를 거닐 수 있도록 오오래 타 빛날 것이다.
팔영산의 정기가 흐르는 북향의 도량 능가사를 돌아 나오다 굽이쳐 흘러넘치는 푸른 물굽이 남해의 눈빛에 빠져들었고, 산자락에 자리한 정겨운 미술관 <남포미술관>에 들렀다. 곱게 석분이 다져진 운동장에는 비를 머금은 자란이 온몸을 흔들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미술관에 우리들은 첫 손님이 되었고 관장 곽형수 화백을 뵙는 횡재를 누렸다. 관장께서는 제1전시실부터 제4전시실까지 한 작품 한 작품 한 시간이 넘도록 우리를 이끌어 그림과 인생, 역사를 안내해 주었다. 살다보니 이런 호사를 다 누린다고 지인들은 연신 감탄을 연발하였다.
한 때는 학생들이 뛰어놀고 학업에 정진하던 영남중학교, 선친이 남기신 학교를 미술관으로 고쳐서 문화와 예술의 열정을 쏟아놓은 남포미술관이 작년 1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전을 여덟 차례나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미술계의 업적으로 남는 치적임이 분명하다.
특히 2013년에는 국립소록도병원 뒤편 대형벽화 ‘염원·소록도의 꿈’을 제작하기도 하였고, 연간 관람객이 30,000명이 넘는 명실 공히 남도의 자랑스러운 미술관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흥의 미술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술관이 된 것이다. 자랑스러운 미술관을 필자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오지호 화백 기념관에 가면/모후산 메주콩 삶는 냄새가 난다/남농 박물관에 가면/노적봉 불끈 솟은 남근을 본다/순천만 화포에 가면/쪽빛 수조 속에 있는 여인이 있다//백민 미술관에 가면/보성강 씻어 맑은 절창의 소리가 들린다/남포 미술관에 가면/팔영산 아버지 흙발 털고 계신다/봉화산 아래 화포에 가면/아침 해 이고 나오는/그녀가 있다”(졸시, 「순천만 12-화포에 가면」전문)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자 한 곽 관장의 예술정신은 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곧 시이듯이, 사람이 곧 미술이다’를 담아낸 결실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터에서 일하다 흙발을 털고 들어와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대하며 인생을 논하기도 하고, 쉼터삼아 휴식을 취하다가 일터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팔영산 자락에 펼쳐있는 것이다.
미술관에는 지역 작품만이 아니라 세계를 아우르는 현대미술작품 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오직 작품을 관람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하고 싶은 강한 메시지가 있는 곳이다. 그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기존 매다는 작품에서 거는 작품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곽 관장은 설명을 더해 주었다. 미술은 잘 몰라도 시선이 줄에 빼앗기지 않는 소통의 자세는 너무나 흡족하고도 남는 일이였다.
남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한 작품들을 돌아보며 예술을 통한 무한한 상상이 우주를 향해 대한민국을 쏘아 올리는 꿈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 남포미술관만이 추구하는 정신은 상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토록 고전될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하에 지극히 한국적이며 남도의 정신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킨 석현 박은용 선생의 작품은 남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미 중 하나이다. 또한 청각장애를 가지고 고향 외나로도에서 작품 활동만을 일관한 최주휴 선생의 작품들은 남포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명작들이다.
고흥에는 이처럼 팔영산 자락을 감돌며 인생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두 도량이 있다. 능가사가 있고, 남포등처럼 낙후된 지역을 밝혀주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남포미술관이 있어 우주를 거닐 수 있도록 오오래 타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