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漵 칼럼
소통하는 인성의 바람직한 자세
정홍순
2015. 10. 14. 15:28
소통하는 인성의 바람직한 자세 |
2015년 10월 14일(수) 1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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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남도민일보]정홍순 순천희락교회 목사/시인= 누가 누구의 말을 듣는 시대인가? 소통의 부재다. 뼈끝 속으로 파고드는 양각나팔 같은 말이 있기나 하는 것이며 들으려 하는 사람 또한 있을까싶다.
한하운 시인이 뼛속에 들은 피리, 인골적(人骨笛)을 불며 걸어온 전라도 황톳길에는 자살을 아끼기 위해 살아낸 생명의 노래가 있다. 문화 빨치산 누명쓰고 오히려 부끄러워 울던 보리피리가 가슴을 적신다.
사람은 갔어도 노래는 남았다. 시인은 떠났어도 말은 살아있다. 소록도 수탄장에 서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심어놓은 발가락 백광의 시가 울고 있다.
자살을 아끼기 위해 살아낸/생명의 노래는/문화 빨치산 누명 쓰고 타던 봄/빨간 모가지 꽃/오히려 부끄러워 울던 천벌의 입으로/단숨에 부른 피-ㄹ닐니리(졸시, 「잇꽃」부분)
뼛속으로 파고드는 말, 허투루 듣지 않는 자세(Attitude)는 영적인 태도이며 삶의 진실이다. 필자의 경우 아궁이 불 지피고 새벽밥 지어 공부시킨 어머니가 어느 날 던지신 말 한마디는 “결심이 부족한 겨”이었다. 그 한마디는 대쪽이 쪼개지듯 가슴을 갈라냈다. 잠시 흔들리던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이 배워서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학의 촌로이었지만 거짓 없는 말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생명 없는 말들이 폭염처럼 작열하고 있다. 향방 없이 허공을 치는 불법한 언어들만 유령처럼 득실거리고 있다. 언어유희가 진실의 도를 넘어 난장판이 되었다. 정론은 사라지고 코미디만 넘치는 사회가 너무 안타깝다.
닭싸움하는 닭의 승패는 한눈파는 것이라 하였다. 부동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순간 싸움은 끝난다는 것이다. 자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됨이란 자세는 인성의 오랜 결과물이다.
청소년의 흡연율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예전 어느 마을 담벼락에는 <노상금연>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어른들이 왕래하는 길거리에서 버젓이 담배 피는 것을 조심하라는 문구로서 그저 아련한 낙서같이 떠오른다.
이제는 제재할 사람도 없고 건강을 이유로 삼가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치기어린 호기심으로 웃어넘길 정도가 아니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공부하는데 피곤할 때마다 한 대씩 태우라고 선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독성이 강한 담배와 같은 것을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서로에게 있다.
오래 묵은 포도주가 좋은 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변질에 있지 않고 변화에 있다. 변화는 충분조건이 잘 갖추어졌을 때 이루어지듯이 소통이라는 좋은 환경이 요구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에서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며 주의를 위해 통곡한다고 하였다.
정체감을 잃어가는 나라 청년들은 울부짖는다. 헬(hell)조선, 지옥의 나라, 망언을 뱉어내고 있다. 이념의 종말을 고한지 오래다. 모두를 위하는 일상의 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당면해 있다.
자세는 한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일임과 동시에 한 사람을 옳게 세워나가는 일이다. 이에 변화는 내 속에서 삭혀 나와야 한다. 절창의 소리가 감동을 자아내듯이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인성의 부르짖음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본 칼럼내용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한하운 시인이 뼛속에 들은 피리, 인골적(人骨笛)을 불며 걸어온 전라도 황톳길에는 자살을 아끼기 위해 살아낸 생명의 노래가 있다. 문화 빨치산 누명쓰고 오히려 부끄러워 울던 보리피리가 가슴을 적신다.
사람은 갔어도 노래는 남았다. 시인은 떠났어도 말은 살아있다. 소록도 수탄장에 서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심어놓은 발가락 백광의 시가 울고 있다.
자살을 아끼기 위해 살아낸/생명의 노래는/문화 빨치산 누명 쓰고 타던 봄/빨간 모가지 꽃/오히려 부끄러워 울던 천벌의 입으로/단숨에 부른 피-ㄹ닐니리(졸시, 「잇꽃」부분)
뼛속으로 파고드는 말, 허투루 듣지 않는 자세(Attitude)는 영적인 태도이며 삶의 진실이다. 필자의 경우 아궁이 불 지피고 새벽밥 지어 공부시킨 어머니가 어느 날 던지신 말 한마디는 “결심이 부족한 겨”이었다. 그 한마디는 대쪽이 쪼개지듯 가슴을 갈라냈다. 잠시 흔들리던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이 배워서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학의 촌로이었지만 거짓 없는 말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생명 없는 말들이 폭염처럼 작열하고 있다. 향방 없이 허공을 치는 불법한 언어들만 유령처럼 득실거리고 있다. 언어유희가 진실의 도를 넘어 난장판이 되었다. 정론은 사라지고 코미디만 넘치는 사회가 너무 안타깝다.
닭싸움하는 닭의 승패는 한눈파는 것이라 하였다. 부동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순간 싸움은 끝난다는 것이다. 자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됨이란 자세는 인성의 오랜 결과물이다.
청소년의 흡연율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예전 어느 마을 담벼락에는 <노상금연>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어른들이 왕래하는 길거리에서 버젓이 담배 피는 것을 조심하라는 문구로서 그저 아련한 낙서같이 떠오른다.
이제는 제재할 사람도 없고 건강을 이유로 삼가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치기어린 호기심으로 웃어넘길 정도가 아니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공부하는데 피곤할 때마다 한 대씩 태우라고 선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독성이 강한 담배와 같은 것을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서로에게 있다.
오래 묵은 포도주가 좋은 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변질에 있지 않고 변화에 있다. 변화는 충분조건이 잘 갖추어졌을 때 이루어지듯이 소통이라는 좋은 환경이 요구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에서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며 주의를 위해 통곡한다고 하였다.
정체감을 잃어가는 나라 청년들은 울부짖는다. 헬(hell)조선, 지옥의 나라, 망언을 뱉어내고 있다. 이념의 종말을 고한지 오래다. 모두를 위하는 일상의 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당면해 있다.
자세는 한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일임과 동시에 한 사람을 옳게 세워나가는 일이다. 이에 변화는 내 속에서 삭혀 나와야 한다. 절창의 소리가 감동을 자아내듯이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인성의 부르짖음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본 칼럼내용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